몇 년 전 필자는 유럽의 방산 대기업 회장을 세미나에서 만났었다. 초면이라 한국에서 비즈니스하는 데 어려움은 없냐고 던진 의례적인 질문에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방위사업청장을 만나면 싱가포르 공무원을 배우라고 꼭 전해 달라고. 그 기관 고위직 출신인 필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어려운 문제가 있어 소관 부서를 한 달 이상 걸려 겨우 찾았는데 이번에는 담당자가 면담 자체를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 공무원은 업체가 만나기를 희망하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방위산업 중흥과 소통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영국 국방부와 방산업체 간에는 중요한 소통 채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국방계약업체포럼(DSF)이라는 것인데, 국방부장관과 영국항공방위산업체(BAE Systems ) 회장이 공동의장이다. 산하에는 실무전문그룹을 두고 국방부·정부 각 부처 고위직과 협력업체 대표들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또 하나는 국방성장동반자그룹(DGP)인데, 여기에도 관련 정부부처 고위직과 13개 방산 기업 대표가 참여한다. 이 두 그룹은 수시로 만나서 국방 획득 사업과 방산 현안을 논의하고 수출 마케팅 전략에 머리를 맞댄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협의체는 있다. 국방산업발전협의회와 방위사업협의회가 그것이다. 전자는 범정부적 방산수출지원협의체로 설치되어 국방부장관과 산자부장관이 공동의장이다. 후자는 국방부차관과 방사청장이 공동 의장이다. 두 협의체 모두 위원은 관련 정부 기관의 고위급 인사로 구성된다. 자문위원으로 민간이 참여한다고는 하나 모두 공공기관의 대표자로 구성되어 있다. 방위사업 수행과 방산 수출의 핵심 역할자이며 직접 이해 당사자인 방산업체 대표자는 두 협의체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자기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이해 당사자가 배제된 가운데 기관장이나 고위 관료들이 1년 또는 분기에 한 번 모여서 어떤 미래 전략과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지난해 방산 수출 70억달러는 세계 6위 수준이다. 실로 대단한 성과이다. 오랫동안 방산 비리 프레임에 갇혀 숨죽여야 했던 방산업체의 피땀 어린 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맺은 결실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올해 목표는 150억달러에 ‘Big 5 진입’이라고 한다. 과연 지금의 한국 방산 구조로 수출 강국들의 대기업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설레는 기대와 함께 염려가 앞선다. 1990년대 초부터 60여 개 방산 기업 통폐합에 착수하여 2020년까지 25개 규모로 대형화·전문화시킨 미국, BAE Systems를 축으로 소수의 대기업 체제로 계열화한 영국, DCNS라는 단일 국영 기업으로 함정 조선소를 통합한 프랑스, 3개의 방산 대기업으로 재정비한 이스라엘과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우리의 국방 과학 기술과 연관 산업 기술은 다른 수출 강국에 뒤지지 않는다.방위산업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융성시키는 데 가장 좋은 전략은 이해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꽉 막힌 소통의 장벽부터 풀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화두는 무엇보다 ‘소통’으로 해석된다. 국민 소통과 효율적 정부, 지역과 원활한 소통, 통합·소통과 협치 등 누누이 강조되는 소통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 각 부처의 기존 소통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그리하여 형식적인 소통이 아니라 이해 관계자 모두가 참여하는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소통 체계가 정립되고 작용하도록 개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