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 일본 대표였던 곤도 세이이치(近藤誠一) 전 일본문화청 장관은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신청을 서두르지 말고 피해 당사국 한국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국 내 우려와 우리 정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년 6~7월 세계유산 등록을 목표로 지난 1일 각료회의를 거쳐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한일 간에 위안부와 강제 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 수출 규제, 군함도 문제 등 산적한 갈등 문제 해결의 노력 대신 새로운 도전과 역사 전쟁을 일본 정부가 재점화하고 있다.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시에 위치한 금은 광산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인 광산 노동자(1141명 이상으로 추정)를 강제 노역시킨 곳이다. 금광맥이 동서 3000m, 남북 600m, 심도 800m에 이른다. 에도 시대부터 폐광 때까지 금 78톤과 은 2330톤을 생산했다. 광산 부지에 현재 남아있는 광산 갱도, 채굴 시설, 선광 제련 시설 등이 중요 문화재 사적 근대산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601년 개발 시작부터 1989년 폐광까지 약 400년에 걸친 광산 개발 운영과 생산 기술 시스템의 변천 과정이 현장에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준비해왔다. 관광 브랜드 이미지 부각을 위해 니가타현과 사도시의 홍보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사도광산과 유사한 강제 노역 현장인 일본의 군함도(軍艦島) 탄광 지역은 근대산업시설 역사 유물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받았다. 메이지(明治)시대에서 쇼와(昭和)시대에 걸쳐 해저에 대량 매장된 석탄 개발로 일본 근대화의 발판이 되었다. 무인도인 군함도에 1916년 이후부터 입항을 개시하고 조선인 탄광 노동자 1939명을 집단 이주시켰다. 폐광 후 2007년 나가사키지재(長崎地裁)에서 열린 조선인 강제 노역 배상 청구권 소송에서 강제 연행, 강제 노동의 불법행위 사실이 인정되었다. 그 때문에 2015년 군함도 탄광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결정할 당시 조건이 조선인과 일부 중국인의 처참한 강제 노동을 명시하고 이를 반성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스스로 약속한 이 같은 후속 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감추고 왜곡하고 있다.
군함도 탄광은 조선인 강제 노동의 심각한 역사적 갈등을 유발한 반(反)인류의 부정적 문화유산(negative heritage)인 점에서 그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것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유 중 하나였다. 히로시마의 원폭 돔과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부정적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이미 등록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 탄광에 이어 사도광산도 한일 간 어두운 역사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군함도의 재판(再版)을 보는 것 같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등록 여부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세계유물 및 유적지협의회(ICOMOS)가 심사한 후 21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가 2023년 6~7월경 결의한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이 요구된다. 사도광산 강제 노역자 역사 자료 수집, 생존 광산 근로자 물증 자료 수집, 유네스코 회원국에 대한 강제 노역 물증 자료 정보 공유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어두운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면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사도광산이 제2의 군함도가 되지 않도록 총력 저지해야 한다. 강제 노역 범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발전적인 한일 관계의 미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