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초기에는 그 위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 위험을 가급적 피하는 접근법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사망자의 95%를 차지하는 60대 이상 고령층 백신 접종이 완료되는 시점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른 피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코로나 예방 효과만 고려하고,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무엇보다 아동∙청소년과 자영업자∙소상공인에 큰 피해를 줬다.
지난해 평균 등교 일수는 법정 등교일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 수업은 허술했다. 프랑스·이탈리아 공동연구에 의하면 잘 준비한 온라인 수업도 대면 수업의 3분의 2(25~30%) 정도 효과만 있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할 것이다.
교육은 임금을 증가시킨다. 1년 동안 양질 유치원 교육을 받으면 성인 임금이 10% 가량 상승한다. OECD는 한국에서 교육 손실이 3분의 2년이라면 향후 80년간 소득 손실이 3300조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 1년 국민총생산이 1700조원쯤 되니 나라 전체가 2년간 아무런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수준이다. 이 수치는 학생들 학습 손실만 고려한 건데 사회성 등 다른 교육 효과를 따지면 훨씬 클 것이다.
미국 학자들 연구를 보면 교육은 수명을 연장시킨다. 1년 교육을 더 받으면 수명이 1.7년 증가한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교육 결손이 주는 파장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중졸자에 비해 고졸자와 대졸자는 수명이 각각 5.5년, 7.7년 길다. 교육연한 1년당 평균 0.5~1.8년 수명 차이가 난다. 단순하게 학습결손 1년이 0.5년 수명을 감소시킨다고 가정하자. 초중고생이 546만명이니 계산하면 전체 생명 손실은 182만 인년 (70만명 × 0.5년 × 2/3)이 나온다. 이는 여생이 15년 쯤 남은 70세 고위험군 12만명 사망과 비슷한 손실이다. 등교 제한은 코로나 사망자를 최소 12만명을 구했어야만 가치가 있는 결정인 셈이다.
더구나 등교 제한은 코로나 확산 차단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각하다고 학교를 닫으면, 그만큼 더 위험한 지역사회로 아이들을 내모는 결과다. 방역수칙이 잘 지켜지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오히려 안전하다.
다음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이다. 매출 감소로 인한 피해는 코로나 유행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와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혼재한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 두기만 피해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거리 두기 정책이 매출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2020년 요식업·미용업은 20~30%, 유아교육·유흥업은 50%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 매출 20~30% 감소는 어떤 의미일까? 자영업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식업 중위값 매출 규모는 연 7600만원이다. 총 소득(영업 이익과 대표자·가족 인건비)는 그 중 2400만원 정도다. 매출이 줄어도 고정비용은 줄지 않기 때문에 매출이 25% 줄면, 소득은 50% 감소한다. 소득이 월 2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줄어든다. 준 실직 상태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실직한 30~40대 사망률이 연 17% 증가하고, 그 결과 수명이 1~2년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도 실업이 사망률을 남자 12%, 여자 60% 증가시키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업은 수명을 1~2년 이상 감소시키는 셈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영업자가 아닌, 음식점, 카페, PC방, 노래방, 유흥업소에게만 영향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업주는 70만명. 이들 준 실업 상태가 수명에 0.3년 영향을 준다고 최소한으로 계산하자면 전체 생명 손실은 21만인년(70만명 × 0.3년)이다. 결코 작지 않는 피해이다. 따라서 거리두기는 감염예방 효과가 큰 곳에 제한적으로 실시해야 맞는다.
이는 많은 가정을 적용한 비교적 간단한 추정이라 다소 부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효과·비용을 다각도로 계산하여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더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