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110여 점이 서울 예술의전당에 전시 중이다. 지난달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국내 처음 전시되는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허위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봐야 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모티브는 6·25전쟁 당시 황해도 신천 지역의 주민들 간에 발생한 참상이다.
1950년 10월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기에 앞서 신천의 공산주의자들이 우익 인사를 대량으로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맞서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한 우익 진영이 봉기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상호 살육전이 벌어졌다. 좌·우익의 충돌로 약 3만5000명의 주민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사건 직후부터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신천 학살’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워서 국내외에 알렸다. 부수상 겸 외무상인 박헌영이 허위 선동을 주도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이 사건 이후 당원인 피카소에게 반미 선전을 위한 작품을 의뢰했다. 프랑스 공산당원인 세계적 철학자 사르트르는 6·25를 “미국의 사주를 받은 남한의 북침”이라고 허위 주장한 당시의 대표 인물이었다. 피카소는 공산당 선전을 믿고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1951년 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작품 설명에서 이런 배경을 고의로 빠트렸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은 북한 선전·선동의 산물로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것이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좌파 진영의 반미 선전에 꾸준히 활용됐다. 북한은 1960년에 신천박물관을 만들어 아직도 이 허위 사실을 선전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군의 양민 학살”을 배경으로 했다는 설명은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를 가나 읽고 들을 수 있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고야(Goya)의 작품인 ’1808년 5월 3일'의 구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고야의 그림이 소장된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가이드들이 이 그림을 설명할 때 천편일률적으로 도록에 있는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을 보여주며 미국이 주도한 ‘신천리 학살 사건’을 그린 것이라 비교 설명해 주고 있을 정도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①’이라는 책의 표지에 실리면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거짓으로 판명 난 이 선전용 그림이 한국의 교과서들에 무차별적으로 실렸다는 것이다. 미군에 의한 ‘신천 학살’이라는 것이 완전히 거짓임이 밝혀지자, 한국 좌파는 국제 좌파 세력과 입을 맞춰 “피카소가 표현하려 한 것은 특정 전쟁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였다”고 항변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런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피카소는 일평생 공산 세력에 의한 전쟁을 비판한 적이 없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중공·소련에 대해선 철저한 굴종과 협력의 길을 택했던 사람이다.
스페인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피카소는 1944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고, 그 이듬해 한 인터뷰에서 “나는 공산주의자이고 나의 그림은 공산주의 그림이다”라고 밝혔다. “미군이 저지른 신천 학살 사건”이란 것이 거짓인 게 밝혀지고 나서도 이 그림에 대한 물타기가 계속되고 있고 서울 전시에서도 이런 노력은 필사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그림이 서울에서 전시된 것은 좋으나 적어도 이 그림의 허구성과 잘못된 배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명시돼야 한다. 아쉽게도 그런 최소한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에 관한 허위 사실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는 것이 관람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