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서 전지불은 공포의 대상이다. 어둠 속 들이닥친 전지불에 눈이 부셔 누가 불을 비추는지는 모르지만 누구의 편인지 답변하길 강요한다. 불을 비추는 이와 다른 편을 말한다면 자칫 목숨까지 잃을 상황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선거관리위원회에도 “당신들은 누구 편이냐”고 묻는 전지불의 공포가 퍼진다. 이른바 선관위를 둘러싼 중립성 논란이다.

정치적 중립성은 선관위에 존립 가치와도 같다. 중립적이지 않은 선관위는 존재할 수 없다. 특정 정치 세력에 편파적인 선관위가 불공정하게 관리하는 선거를 신뢰할 유권자는 없다. 유권자의 눈이 선관위를 보고 있다. 선관위의 모든 구성원은 ‘십목소시 십수소지(十目所視 十手所指)’, 열 사람의 눈이 보고, 열 사람의 손이 가리킨다고 여기며 혹시라도 제기될 수 있는 중립성 시비를 방지하고자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그럼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허점이 생긴다. 업무 처리가 미흡했다면 보완하고, 법규 해석이 불충분했다면 추가 설명을 제공하면 된다. 이를 두고 누구의 편인지 물으며 끝없이 선관위의 중립성을 의심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다면 도리어 그 밑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묻게 된다.

정권과 관계없이 매 선거를 전후해 선관위를 둘러싼 중립성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이를 통해 얻는 소수의 정치적 이익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선관위가 불필요한 시비를 거듭하는 사이, 논란을 부추긴 이들이 얻는 작은 정치적 이익에 비견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가 누적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선거 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고 했다. “부정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이 선거 제도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짓밟는다”면서 말이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선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궈온 이 나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오롯이 국민의 힘으로 부정선거를 바로잡고 직선제를 쟁취한 빛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지켜내고 실현하는 것이 선관위의 역사적 사명이며, 헌법적 책무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어떤 정파적 이익도 염두에 두지 않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기관이다. 중립성 시비로 선관위가 흔들리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선관위를 흔드는 것은 국민의 주권 의지를 흔드는 것과 같다.

선거에 대한 불신 확산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리키는 바로미터가 된다. 국민의 의사를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표출하는 수단인 선거의 의미가 퇴색해 선관위의 중립성 논란만 남는 선거는 유권자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오는 4월 7일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선관위의 중립성 논란이 잦아들길 소망해 본다. 선관위도 선거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킬 수 있도록 선거 정보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 대신 선거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 선관위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선관위를 믿고 재·보궐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소망한다. 선관위는 국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