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미국 등에서는 ‘에디슨 붐’이 불고 있다. 2017년 BBC는 실리콘밸리의 기원이 150년 전 에디슨에게서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작년에는 미국 최고의 전기 작가가 ‘에디슨’을 출판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필독서로 지정했다. ‘에디슨 붐’에 대하여 시드니대 이언 윌스 교수는 “혁신이 중요해지면서 에디슨이 혁신의 상징”으로 부활했다고 진단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에디슨은 특허를 1093개 보유한 ‘발명왕’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은 ‘기업가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난했다. 하지만 그는 발명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청년 시절 특허 10여 건을 5000달러, 3만달러, 10만달러 등에 매각하면서 사업을 키워나갔다. 에디슨은 이렇게 사업을 키우면서 모은 종잣돈으로 백열전구 발명에 나섰다. 이때에도 에디슨은 특허를 매개로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백열전구 발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천하의 발명왕 에디슨도 수렁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특허 조사를 통해서 문제 해결의 힌트를 얻고 위기에서 탈출했다. 백열전구가 완성되자 에디슨은 ‘에디슨 전구 주식회사’ 설립 등 창업에 나섰다. 초기 자금이 부족했던 에디슨은 특허를 담보로 자금을 융통했다. 에디슨의 백열전구가 승승장구하자 우후죽순 백열전구 기술을 도용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에디슨은 특허 소송을 수백여 건 벌여 백열전구를 지켜냈다. 이 덕분에 에디슨이 세운 스타트업 에디슨 전기주식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GE)으로 성장했다.
백열전구 사업에서 에디슨 개인의 역량이 중요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의 역량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에디슨이 살았던 당시의 토양과 분위기다. 19세기 미국은 정부의 연구 보조금이나 창업 지원 시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디슨은 오로지 특허에 기대어 사업을 펼쳤다. 이런 게 가능했던 것은 에디슨이 사업을 하기 이전에 특허제도가 잘 정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의 특허청을 설립했다. 심사는 빠르고 정확했다. 앞선 발명자의 특허를 참고할 수 있도록 미국 전역에 특허도서관도 설치되었다. 특허 소송이 벌어지면 법원은 발명가의 손을 들어주는 비율이 50%에 달했다. 유능한 변리사가 등장하고 특허를 사고파는 시장이 번성했다. 에디슨은 이처럼 좋은 특허 환경이 있었기에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우리는 150년 전 에디슨이 꿈을 펼치던 시대보다 혁신하기에 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 투자는 GDP 대비 4%를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벤처캐피털 투자도 최근 늘어나고 있다. 전국 규모에서 스타트업 타운도 조성 중이다. 그러나 부정적 평가도 꽤 많다. ‘산학 협력은 잘 안 되고 기술 이전은 실속이 없다’ ‘특허 소송에서 이겨도 손해배상은 쥐꼬리다’ ‘특허가 싸구려고 쓸 만한 특허가 드물다’ ‘좋은 특허가 있어도 자금을 빌리기 어렵다’. 이런 문제들을 대충 넘기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개발, 창업, 금융, 교육, 사법 등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여간 풀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지식재산처가 필요하다. 지식재산처가 설립되어 연구·개발, 창업, 금융, 교육, 사법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의 뿌리를 살펴보고 해법을 내놓고, 지식재산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했으면 한다. 발명에 뛰어난 우리 청년들이 에디슨처럼 자신의 꿈을 펼치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