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2013년 윤석열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그가 정권이나 권력에 충성하지 않고 법치에 충실한 강골 검사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줬고, 그런 그가 검찰총장 재직 시 전직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고 조국 사태로 문재인 정부와 등을 돌리는 데까지 이르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제 1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윤 전 대통령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처세훈(處世訓)을 그를 지지하고 애석해하는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바란다. 즉, ‘나에게 충성하지 말고, 당(黨)에 충성하고, 민주주의 회복에 충실하고, 보수의 가치에 매진할 것’을 요구했으면 한다. 그것이 한때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나라에 헌신한다고 선서한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개인적으로도 죽어서도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계엄 결정이 적절했느냐 아니냐는 본질 문제를 지금 여기서 논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여파와 후유증이다. 그로 인해 보수 정권이 넘어가고, 그 정권에 종사했던 많은 관리와 군인이 영어의 몸이 되고, 정당이 두 쪽이 나고, 정치가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초래됐다. 그 책임은 그의 열정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계엄의 실패에 따른 엄청난 후과(後果)에 이르고 있다. 그가 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계엄이라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수단이다. 상대방을 베지 못하면 자기를 베게 되는 양날의 칼이다. 계엄이 아무리 불가피했다 생각했어도 그것이 실패한 이상, 그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제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을 놓아주고 동시에 법정 공방에서 해방시켜 줘야 한다. ‘나를 밟고 넘어가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법정 싸움에 몰두해 여당을 더욱 ‘내란 몰이’로 신나게 해서 반(半)영구 집권하게 만들고 야당은 두 쪽 내는 것은 가중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들을 법정에 세워 군(軍) 인생을 끝장내는 오늘의 상황을 침통하게 보기 바란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난다면 윤 전 대통령의 존재감은 더욱 초라해질 것이다. 그 모든 원망을 혼자서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왕좌(王座)에서 쫓겨나 영월로 유배된 뒤 자신을 복귀시키려는 신하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본 단종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의 결단이 당의 현 지도부와 중진들, 그리고 구성원들의 아집과 무능을 깨는 자극제로 작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절체절명한 것은 야당이 세(勢)를 회복하는 것이다. 야당이 저렇게 찌부러져서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야당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나라의 균형을 위해서다. 그리고 여당을 위해서도 야당 세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번 선거, 그리고 앞으로 있을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효율적인 여당’으로 남기 위해서도 ‘견제하는 야당’의 존재는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이대로 민주당이 집권자를 옹호하기 위한 무소불위의 기세, 혹세무민의 자세, 안하무인의 질주를 계속하면 국힘의 파국과 상관없이 민주당의 우위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대외 문제에서도 이재명 정권은 좋게 말해서 ‘자신감’, 나쁘게 말해서 ‘분수 모름’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우리의 자존감은 중요하다. 또 지금 미국의 트럼프가 이끌고 있는 세계의 정세가 과도하게 제국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위가 아니다. 그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발언’은 그런 질주와 과도한 자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 말할 때와 삼갈 때를 가리지 않는 평지풍파가 그 예(例)다.
나는 그가 대선 출마를 고민하고 있을 때 ‘윤석열을 주목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정치의 새 물 유입을 정치 개혁의 출발점으로 봤다. 하지만 결국 정치는 ‘해 본 사람’들이 하는 게임이고 새 물은 끝내 퇴출시키고 마는 완고한 기성의 덩어리 모임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요즘이다. 새 물의 유입은 구원투수 역할이면 족하다. 그리고 구원투수는 등장할 때와 달리 퇴장할 때는 쓸쓸한 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