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예상 못한 사태가 발생해 전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전쟁이 전쟁을 시작한 측이 의도(意圖)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드물다. 전쟁에 패배한 국가는 물론이고 전쟁에 승리한 국가도 전쟁이 초래한 결과를 마주하고 당황하는 때가 많다.
대한민국은 전쟁이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의도한 것과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걸 증언할 수 있는 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다. 6·25 전쟁이 김일성의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한국은 한 달 만에 부산(釜山) 밖으로 밀려나고 김일성의 나라가 됐을 것이다. 김일성의 전쟁 계획표에는 철수한 미군이 다시 돌아와 참전(參戰)할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은 김일성이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6·25 직전 한국 군사력은 초라했다. 병력은 북한의 반(半)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이 200대 넘는 탱크를 보유한 데 비해 한국은 탱크가 아예 없었다. 경제 산업면에선 더 형편이 없었다. 한반도 발전(發電) 설비의 90%가 북에 있었다.
김일성은 추방과 처형으로 반대 세력을 완전히 제거한 데 비해 한국 곳곳에선 좌익 폭동이 잇따랐다. 곧 무너질 나라처럼 비쳐 김일성이 남침을 결정했지만, 한국은 전쟁이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단련돼 부강한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1주일이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할 것으로 봤다. 이제 러시아 전쟁 계획표는 러시아군의 무능을 증명하는 성적표가 됐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도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 목적은 늙은 하메네이 등 신정(神政) 독재 지도부를 제거하고, 핵폭탄 원료인 농축우라늄을 파괴하거나 나라 밖으로 이송하고, 시민 봉기를 유발해 정권을 무너뜨리고, 탈(脫)신정 민주 국가가 들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백악관 상황실에서 세계 최고 정보기관 모사드가 마련한 이 정보 판단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브리핑했지만 달성된 것은 늙은 하메네이를 죽이고 그 아들로 교체한 것이다. 참수(斬首) 작전마다 성공했으나 상황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란 공군력을 초토화시키고 미사일 공장을 파괴했지만, 이란은 얼마 남지 않은 전력(戰力)으로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를 혼란 속에 밀어넣었다.
이란 전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이간(離間)시키고, 미국의 지도력을 손상하고,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에 분쟁의 조정자(調停者)라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우크라이나 전비(戰費) 조달에 허덕이는 푸틴에게 막대한 석유 판매 자금을 쥐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걸프 국가들은 안보를 위해 미군 기지를 유치하는 것이 안보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스라엘의 손익(損益) 계산은 조금 복잡하다. 최대 위협인 이란 군사력을 궤멸시키고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을 약화시킨 건 성과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을 잃었다. 이스라엘 방위력의 핵심은 미국 정부의 지원 정책과 이스라엘 생존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미국 국민의 공감(共感)이다. 얼마 전 갤럽 여론조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감 수치가 엇비슷하게 나타났다. 과거에 없던 결과다. 이란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더 집요해졌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먼 나라 전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던 북한군은 돌아와 AI와 드론이 전면 등장한 현대전을 체험한 전력(戰力)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쟁 반발 후 한국은 미국에 ‘힘이 되는 나라’인가 ‘짐이 되는 나라’인가를 반복해서 묻고 있다. 미군이 ‘북한 핵폭탄 곁에서 한국을 지켜주고 있는데 한국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토도 탈퇴 위협을 받고 있지만 나토는 32개국이 가맹한 조직이다. 산술적으론 그들이 받는 압력은 n분의 1이다. 일본과 호주에도 압박을 가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이진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무장 가능성을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공동 위협으로 인식해 전쟁을 시작했다. 북한은 핵무장 위험이 있는 나라가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다. 한국은 미국에 도움이 될 역량(力量)도 있고 의지도 있다. 그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핵을 한국과 미국에 대한 공동 위협으로 한국만큼 절실하게 인식하게 될까. 한국 안보 문제는 결국은 북핵 문제다. 한국에게 북핵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