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변호사를 적게 뽑는다고 한다. 회계사는 더 심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모두 AI 때문이다. 예술은 다를까. 지금 AI는 소설도 쓰고 노래도 작곡하며 영화도 만든다. ‘예술’이 아니라 그저 무난한 넷플릭스용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라는 반박도 있지만, 어쨌든 ‘AI의 습격’은 현실이다. 소설가 장강명(51)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다. 그는 논픽션 ‘먼저 온 미래’(동아시아刊)에서 AI에 적응하지 못한 프로 바둑기사가 예외 없이 도태된 현실을 취재해 썼다. 다른 장르보다 먼저 온 미래였다. 한편으론 1000쪽 가까운 벽돌책만 골라 읽은 뒤 ‘살면서 한 번은 벽돌책’(글항아리刊)을 펴냈다. 모든 지식은 이제 AI에 의존하면 된다는 세상에서. AI 파고(波高)에 대처하는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투병 중인 아내 간병으로 외출을 삼가는 작가를 위해, 인터뷰는 전화와 서면, 그리고 추가 보충 질문의 형식을 택했다.

-AI 시대에 벽돌책이라니.

“그래서 더 필요하다. 자동차 발명 이전에는 유산소 운동이 필요한 사람이 거의 없지 않았나. 뭐든지 즉시 답해주는 기계가 옆에 있으면 혼자 답을 찾기 위해 숙고하는 능력이 그만큼 감퇴한다. 사고(思考)의 결론이 아닌 과정을 익히고 싶다면, 대가들이 논증 과정을 세세히 기록한 두툼한 벽돌책만한 게 또 있겠나.”

-1000쪽짜리 1권보다 200쪽짜리 5권 독서가 낫지 않나.

“어떤 복잡한 생각은 분량을 요구한다. ‘지구는 둥글다’라는 단순 지식과 그걸 어떻게 입증하는가를 답하는 지식은 완전히 다르다. 지구의 적도 지름이 왜 극(極)지름보다 긴지 제대로 답하려면 설명이 복잡하고 길어진다. 구호나 격언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문장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도 모른다.”

‘먼저 온 미래’에서 AI를 활용하지 않는 바둑 기사는 하나같이 도태됐다. 바둑을 예술이라 생각하던 작가들은 하나같이 좌절했다.

-그렇다면 문학은.

“다른 장르처럼 문학도 여러 주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AI 활용에 따른 인센티브를 얻는다. 유명 작가가 AI와 맺을 관계, 무명 작가가 AI와 맺을 관계, 문학 출판사, 편집자, 서점이 AI와 맺을 관계가 다 다르다. 예측은 어렵다.”

-당신의 AI 활용 사례가 궁금하다.

“얼마 전 알래스카의 휘티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 테마 소설집에 참여했다. 휘티어는 인구 대부분이 한 건물에 모여 사는 아주 특이한 도시다. 평소 나 같으면 그 도시 자료 검색에만 며칠을 썼을 거다. 영문 자료들을 붙들고 끙끙거렸겠지. 그런데 이걸 AI에 맡겼더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계가 짧아졌다. 전에는 자료 조사 먼저 하고 글을 썼는데, 지금은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AI에 물어본다.”

-무례한 질문 하나. 소설 쓰는 AI가 등장하면 당신도 사용할 건가.

“나는 그 질문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가에게 선택권이 있을 거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금 던져야 하는 질문도 ‘문학이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다.”

그래픽=김성규

-좋다. 질문을 바꿔보자.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논픽션 ‘먼저 온 미래’의 결론은 기술이 가치를 이끄는 게 아니라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가치에 대해 잘 모른다. 가치란 무엇일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내 나름의 답안을 소설을 통해 제출하고 싶다.”

장강명은 ‘STS’로 명명한 소설들을 요즘 펴내고 있다.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그는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2023)을 펴내며 “우리의 삶과 사회는 기술로 인해 ‘변질’된다. 그 변질을 포착하는 것이 STS SF의 목표”라고 적었다. 본지에도 극도로 짧은 STS 픽션 ‘근미래의 풍경’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류츠신, 후지이 다이요 등 동북아 SF 작가들과 함께 소설집 ‘멋진 실리콘 세계’를 펴내기도 했다.

-AI는 문학 창작 풍경을 어떻게 바꿀까.

“바둑 학원은 이제 바둑이 아니라 아이들의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로봇 집도가 더 정확하고 싸고 빠른 것으로 판명되면 수술용 메스 역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을 거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썩 내키지 않는 상상이지만 어쩌면 인간 소설가의 역할은 AI 에이전트들을 조화롭게 잘 부리는 데 있다는 식으로 정리될지도 모른다. 영화감독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하지만 내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의 개념이 바뀔 때는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면 발표하지 않고 혼자 쓰거나.”

-그 기준선은?

“AI를 상대로 위정척사 운동을 벌이겠다는게 아니다. 단지 ‘이건 못 하겠다’는 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 전 대형 출판사 팀장급 편집자로부터 들은 얘기다. 비소설의 경우에는 이제 이틀 만에 책 한 권을 써내는 저자가 있다고 한다. 편집자와 논의하며 목차를 확정하는 데 몇 달이 걸리고, 그다음 원고를 쓰는 데는 (AI덕분에) 이틀 정도 걸린다는 거다. 이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인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작업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는 ‘어떻게든 작가로 살아남겠다’는 다짐보다 절필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고 했다. 한 번 더 그 경계선을 묻자, 그는 자신이 쓴 에세이 한 편을 보내줬다. ‘AI의 파고 앞에 선 소설가’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중국 인민대 철학과 주루이 교수는 비행기를 탔다가 난기류에 휘말린다.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요동칠 때 그는 결심한다. 최소한 내가 살겠다고 옆자리 노부부를 짓밟지는 않겠다고. 작가는 ‘내리막길에서 달리기 하는 신세’라는 비유를 썼다. 뒤처지면 죽는다는 공포에 사로잡히면 속도를 통제하지 못하면서도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은 그때 발생할 수 있다. 문학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소설을 쓰겠다는 다짐보다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것보다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보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더 중요하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로 도망가지 않겠다.”

소설가 장강명의 얼굴 사진과 이번 인터뷰 내용을 주고 이미지 생성 모델 나노 바나나에게 사진을 만들어달라 요청했다. 큰 사진은 이 작업의 전문가인 사진부 장련성 기자, 작은 사진은 아마추어인 취재 기자의 작업 결과다. AI가 쓴 소설은 인간 작가가 쓴 작품을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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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릴러, 범죄 소설부터 AI가 대체할 것”

#1. 한 달 전 영국의 대형 출판 그룹 아셰트는 서점에 깔린 스릴러 소설 ‘샤이 걸(Shy Girl)’을 모두 거둬들였다. AI로 소설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예정됐던 미국 출판 계획도 취소됐다. 20대 작가 미아 발라드는 자신이 아니라 교정·교열을 맡은 편집자가 AI를 일부 활용한 것 같다며 책임을 돌렸다. 뉴욕타임스는 “대형 출판사가 AI 사용을 이유로 소설 판매를 중단한 최초의 사례”라고 했다.

#2. ‘샤이 걸’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민데루(Minderoo) 기술·민주주의센터’는 소설가와 편집자 400여 명 설문을 바탕으로 ‘생성형 AI가 소설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로맨스(66%), 스릴러(61%), 범죄 소설(60%) 등 장르 소설이 AI에 가장 취약하다고 봤다. 정형화된 플롯,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조적 공식 등의 존재 때문에 AI가 쓰기 쉬운 장르라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이 보고서는 그나마 순수 문학·본격 문학이 버틸 만하다고 했다. AI가 위협적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장르 소설의 절반에 불과했다. 순문학의 목적 중 하나는 인간의 복잡성을 탐구하고 전달하는 것. AI는 통계적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단어와 서사를 나열할 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실제적 고통이나 기쁨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반박의 핵심이다. 독자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작가라는 인격체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인데, AI가 쓴 글이라는 걸 아는 순간 신뢰는 깨진다고 했다.

작가들의 AI 활용 실험은 그들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기획이나 자료 조사용이 많다. 황석영은 최근 발표한 장편 ‘할매’의 밑그림 작업에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고, 김초엽은 과학 잡지 ‘에피’ 24호를 통해 가상 세계의 지명·인명·물건명을 지을 때 활용했다고 했다. 반면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일본 작가 구단 리에는 최근 발표한 단편 ‘그림자 비’를 쓸 때 자신이 처음과 마지막 문장만 써서 방향을 잡고, 나머지 95%의 본문은 AI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문장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고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