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건들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민 보호 의지는 선명하고도 강렬했다. 캄보디아발(發) 범죄 피해가 잇따르자 전담반을 현지 파견해 작전을 펼쳤다. 캄보디아 당국과 함께 범죄 조직을 적발하고 감금된 한국인을 구출했다. 보이스 피싱이며 스캠 사기로 국민 돈을 뜯어내던 조직원 73명을 수갑 채워 압송해온 뒤 이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한국인 건들면 패가망신… 빈말 같습니까?” 이 글을 캄보디아 말로도 번역해 올리는 바람에 캄보디아 정부가 항의성 문의를 해오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빈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해 복역 중이던 ‘마약왕’을 송환해 왔다. 이 대통령이 필리핀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해 성사시켰다고 했다. 살해범을 데려와 의정부 유치장에 수감시킨 날, 이 대통령은 또 글을 올렸다. “대한국민을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반드시 잡는다.”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에 국민 마음은 든든해졌다.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샘솟았다.
단, 조건이 있었다. 모든 나라가 다 해당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쿠팡의 고객 정보 3370만건을 빼돌린 범인은 중국인이었다. 탈취당한 정보엔 이름·주소·전화번호는 물론 일부 주문 내역, 현관 비밀번호까지 들어 있었다. 보이스 피싱이며 각종 범죄에 악용될 만한 민감 정보가 수두룩했다. 국민의 재산 피해는 물론 안전·생명마저 위협할 정보가 유출된 것이었으나 ‘지구 끝까지 추적’을 장담하던 정부 대응은 밋밋하기만 했다.
범인은 범행 직후 중국으로 갔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신병을 확보 못해 실체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건 발생 4개월 넘도록 피의자 대면 조사를 했다는 소식조차 없다. 사실상 전 국민 개인 정보가 탈취당한 사건인데 정부 차원에서 강력 대응하는 게 마땅했다. 한·중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당장 범인부터 넘겨받아야 했다.
그런데 책임자인 법무장관은 “(지금까지) 중국이 우리의 범죄인 인도 청구에 응한 적이 한 건도 없다”고만 했다. 어차피 안 해줄 테니 노력도 안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사건 후 중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회담에서 이 문제를 꺼내지도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어쩌라고요”라고 반문하며 ‘혐중(嫌中)’을 비판했다. 필리핀 대통령에게 범인 인도를 요청하던 때와 180도 달랐다.
중국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북한엔 최소 7명의 우리 국민이 억류돼 있다. 선교사 3명, 탈북민 4명이 체포돼 길게는 14년째 악명 높은 노동 교화소에 감금돼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취임 반년이 넘도록 이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작년 말 외신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배석한 참모에게 맞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생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다. 외국 기자조차 아는 사실을 한국 대통령은 몰랐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북에 의한 자국민 피해는 한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도 같은 일을 당했지만 억류가 확인되는 족족 교섭을 벌여 석방시켰다. 그렇게 구해 낸 것이 확인된 것만 30명에 가깝다. 일본도 고이즈미 총리가 2004년 평양 회담에서 김정일과 담판을 벌인 끝에 납북 일본인 5명을 구해 오는 데 성공했다. 자국민이 생사 기로에 처했는데 국가 수반이 인지(認知)조차 못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일 것이다.
가해자가 거부한다고 순순히 물러나는 나라도 없다. 일본은 아직 못 데려온 납북자 12명을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다. 역대 일본 총리는 이들을 상징하는 푸른 리본을 달고 다니며 기회 있을 때마다 구출 각오를 반복해 밝혔다. 지난달 중동 전쟁 와중에 백악관에 간 다카이치 총리 가슴에도 리본이 달려 있었다. 화급한 현안이 산적한 속에서도 그는 납북자 의제를 빠트리지 않았고, 트럼프의 협력 약속을 재확인받았다.
우리에겐 억류된 7명뿐 아니라 국군 포로 8만명, 6·25 납북자 10만명, 전후 납북자 500여 명 문제도 있다. 대부분 세상을 떠났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생존 가능성이 있는 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국가의 도리다. 윤석열 정부는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 2022년 한·미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송환’을 의제에 올려 공동 성명에 명문화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 대통령과 두 차례 회담했지만 한 번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하는 국민을 잊은 것이다.
‘한국민 해치는 자’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응징 원칙은 상대가 누군지 낯을 가리는 듯 하다. 지난 주 ‘서해 수호의 날’ 행사에서 이 대통령은 북의 사과를 받아 달라는 천안함 유족 요청에 “사과하란다고 (북이) 하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가해자가 안 한다고 요구도 안 하면 그것이 나라인가. 만만한 상대만 골라 큰 소리치는 ‘방구석 여포’에게 겁먹을 깡패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