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EPA 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지난 80년 동안 미국 대통령은 ‘자유 세계의 지도자(The Leader of the Free World)’로 불렸다. 미국도 이 호칭(呼稱)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 이 ‘자유 세계의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 통과하는 일만큼 위험한 일이 됐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高市早苗) 총리 정상회담은 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의 경시(輕視)와 비하(卑下)에 시달려 온 NATO 국가들은 트럼프 상대하기에 뭔가 힌트라도 나오려나 하고 회담을 지켜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큰 부상을 입지 않고 꽤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무사히 도쿄로 돌아왔다.

일본 총리는 취임하면 첫 방문지를 워싱턴으로 정한다. 일본이 미국 점령에서 벗어난 1950년 이래의 정석(定石)이다. 어느 일본 원로(元老)는 취임 후 첫 워싱턴 방문을 앞둔 일본 총리가 느끼는 긴장감은 공포(恐怖)에 가깝다고 했다. 일본은 위아래 없이 이번 정상 회담 시기가 최악(最惡)이라며 결과를 걱정했다.

우선 워싱턴에 가져갈 선물부터 챙겼다. 일본은 트럼프에게 5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약속했다. 1차분 360억달러는 이미 투자처를 확정했고 이번 방문에서 2차분 730억달러 규모 투자처를 매듭지었다. 한국과 유럽은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았다.

목에 가시는 호르무즈 군함 파견이었다. 다카이치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고, 트럼프는 그걸 받아내 ‘이것 보라’며 NATO 국가를 압박하고 싶었다. 다카이치에겐 헌법 9조라는 방패가 있었다. 9조는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점령 시기에 미국이 일본 목에 매단 방울이다.

호르무즈 군함 파견은 이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딜레마는 다카이치가 이 조항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총리가 됐다는 것이다. 다카이치는 자기가 폐기하겠다는 헌법 조항을 파병(派兵)이 불가능한 이유로 끌어다댔다. 트럼프는 다카이치의 이런 모순을 눈감고 넘어갔다.

나토 국가는 “나토는 방어 동맹이지 공격 동맹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트럼프 지원 요청을 외면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토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그들 곁을 지켜줬는데도, 우리가 필요로 할 때 그들은 우리 옆에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나토 국가들은 미국이 나토에서 발을 빼거나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고 불안해하고 있다.

일본과 나토의 처지를 바꿔 놓은 것은 다카이치의 다음 말이었다. “세계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도널드(트럼프) 당신뿐이라고 생각하고 확실히 응원하겠다.” 지금 세계 분위기에선 웬만한 강심장이거나 웬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으면 하기 힘든 소리다.

미국은 동맹국이나 우방국의 지원과 응원 없이 ‘외롭게’ 전쟁을 끌고 가고 있다. 미국 내 여론도 좋지 않다. 트럼프에게 군사적 지원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절실한 게 전쟁의 정당성을 옹호해 주는 정치적 지원이다. 다카이치는 그 부분을 긁어주었다. 유럽 신문은 다카이치 외교를 ‘아첨 외교’라고 비아냥댔지만 일본 여론조사는 미·일 정상 회담 ‘성공’이 69%, ‘실패’가 19%다. 정권 지지는 71%, 반대 20%다.

일본은 왜 이렇게까지 미국에게 자세를 낮출까. 170년에 이르는 미·일 관계 역사에서 두 나라가 적(敵) 또는 지배-피(被)지배 사이로 지낸 건 15년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국민의 의식 바닥에는 ‘적’이나 경쟁자로 마주쳤던 미국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다카이치가 방미(訪美) 준비에 여념이 없던 3월 9일은 도쿄 대공습 70주년이었다. 이 하루 폭격에서 10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앉아서·누워서·서서 불타 죽었다. 히로시마 원폭보다 피해가 컸다.

일본의 30년 불황도 거슬러 올라가면 원인의 한 가닥은 미국이 반(半)강제로 일본의 통화 가치를 2배로 올렸던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닿는다. 일본 반도체 산업 몰락의 직접 원인은 1986년과 1991년의 미·일 반도체 협정이다. 미국이 친구에서 ‘적’이나 경쟁자로 돌아섰을 때의 얼굴을 일본은 잊지 못한다.

한국은 어떻게 해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유지된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假說)’을 당연하게 여긴다. 북한은 6·25 때 적으로 상대했던 미국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을 욕하면서도 한사코 미국에만 매달린다. 미국은 어디에서 봐도 둥근 보름달이 아니다. 미국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한국을 시험대 위에 올려세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