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이 국민을 아이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의 BTS 공연을 다루는 정부의 방식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공연 며칠 전부터 세종대로 일대에 울타리를 쳤고, 공연 전날 밤부터 광화문 일대 도로를 봉쇄했고, 공연 당일 아침부터 시민에게 안전 문자를 재난 문자처럼 반복 발송했다. 서울과 경기 버스를 우회시키고, 도심 지하철역 3곳을 폐쇄했다. 31곳에 금속 탐지 게이트를 설치해 관객 소지품까지 검열했다. 좋게 말하면 보호, 나쁘게 말하면 단속이다. 한국 국민은 공권력이 이 정도까지 개입하지 않으면 사방이 뚫린 대도시 광장에서 자기 안전도 지킬 수 없는 수준일까.
공연은 관객 숫자만큼 열기가 중요하다. 26만명이 아니라 5만명이 모였다고 해도, 관객이 에너지를 충분히 분출하면 성공한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연은 기대에 못 미쳤다. 대전 화재 참사가 분위기를 가라앉힌 영향도 컸을 것이다. 팬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BTS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있다. 공연 직후 소속사인 하이브 주가가 폭락한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대했는데 1989 평양 축전을 본 것 같다’는 평을 소셜미디어에서 읽었다. 올드하지만 핵심을 건드린다. 자유와 속박의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지나친 개입이 시민의 발을 묶어 광화문 공연의 흥을 깼다고 많은 사람이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경찰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공권력의 이번 대응은 서울 이태원 골목에서 일어난 핼러윈 참사 때 트라우마가 극단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핼러윈 참사가 세월호 참사와 다른 점, 그래서 더 진지하게 논의했어야 할 것이 ‘자기 책임’ 문제다. 학생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승객을 실은 비행기가 둔덕을 박은 게 아니다. 그들은 자유 의지에 따라 축제를 즐기려고 좁은 골목에 들어갔다. 밀고 밀리다가 사고가 났다. 대부분 성인이었다. 잔인해지자는 게 아니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도 함께 말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이 공권력에 돌아갔다. 경찰 지휘부가 날아갔고, 그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수난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얕보는 사회일수록 권력에 과잉 의존한다. 한국 경찰은 로보캅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다. 내려온 명령이 합헌인지, 위헌인지 판단해 행동해야 한다. 넋 놓고 따랐다가 경찰 1·2인자가 12년형, 10년형을 받았다. 한국 경찰은 전국 유흥가 뒷골목에 몰려들 인파까지 예측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어쩌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경찰은 수사와 재판에 평생 시달려야 한다. 이번에도 사고가 났다면 모든 책임을 경찰에 물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경찰이었어도 예상 인파를 26만명까지 부풀려 도심 전체를 철통 방어했을 것이다. 그날 경찰이 보호한 것은 BTS도, 시민도 아니다. 경찰 자신이다.
K-컬처는 개인의 자유 의지가 성공시킨 대표적인 분야다. 한국이 후진국이던 때 태어난 나에게 한국 문화의 대성공은 반도체와 자동차의 성공보다 기적적이다. 이 분야에서 초기에 성공해 떼돈을 번 사람에게 비결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하찮은 ‘딴따라’라고 공무원이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속도, 보호도 없는 샌드박스에서 자유 의지를 불태웠다. 미성년자가 혹사당하고, 열등생은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 나락에 떨어져도 다들 스타를 꿈꾸며 전진했다. 워라밸과 주 52시간 근로에 얽매였다면 가능했겠나. 자유 의지의 상징이 K-컬처이고, 지존의 영웅이 BTS다. 그들의 축제를 단속과 규제에 이골이 난 공권력이 관리했으니 열기는 사라지고 행사는 경직됐다.
서울 도심 광장은 공공재다. 아무나 독점하면 안 된다. 사기업인 하이브와 넷플릭스 이벤트에 왜 공공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느냐는 불만도 많았다. 하지만 35년 이상 광화문에서 노동단체와 종교단체의 미친 듯한 소음에 시달려온 입장에서 그날 공연은 축복과도 같았다. 주말 광화문은 시위대가 장악한 금단(禁斷) 지역이 된 지 오래다. 매주 공연을 열었으면 좋겠다. 대신 쉽게 접근할 자유를 달라.
2002년 월드컵 당시 서울 광화문에 수십 만이 몰렸을 때 이번과 같은 경찰의 철통 경비가 없었어도 대형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공권력이 총동원돼 단속하고 보호해야 할 만큼 지난 24년 동안 국민의 질서와 안전 의식이 약해졌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들 핼러윈 트라우마에 빠져 허덕이는 것이다. 이태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국민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국민은 나라가 자식처럼 보호해야 할 금쪽이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