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부동산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년 부동산 트랜드 서적을 발간하고 있다. 2017년 저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로 북촌의 한옥을 지킨 정세권의 업적을 대중에게 알렸다./남강호기자

서울의 특정 공간이 정치 테마가 된 것은 청계천 이후 처음일 것이다. 6월 지방선거의 이슈가 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이야기다. 과거 낙후된 공업 지대였던 성수동은 크게 변했다. 서울 최고의 녹지 공간에 이어 최고급 주거 공간이 들어섰고, 그다음 서울 강남에서나 가능했던 글로벌 소비 공간과 신생 기업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20년에 걸친 이런 변화가 한 사람의 작품일 수는 없다. 국가의 인프라 자원 투입과 규제 완화, 민간 기업의 도전적 지역 개발, 무엇보다 젊은 예술가와 경제인의 안목과 노력이 융합된 결과다. 물론 이런 요소를 특정 공간에 끌어들여 선순환을 일으킨 행정가의 힘도 평가받아야 한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계획, 부동산 전문가다. 그는 초기 발전 단계부터 도시 개발의 관점에서 성수동을 연구하고 평가해 왔다. 그에게 ‘MZ의 성지’에서 ‘정치 핫플’이 된 성수동 이야기를 들었다.

-성수동의 변화를 총론적으로 평가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이어진 결과다. 변화를 이끈 리더십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요인이란?

“성수동은 어느 날부터 젊은이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핫플·번화가)가 됐다. 이것이 첫 변화다. 그다음 중요한 변화는 낙후된 공업 지대에 새로운 경제적 성공의 기대가 모여들었다는 것, 새로운 업무 지구에서 경제적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갑자기 달라진 요인은?

“2000년대 이후 서울 상권은 특이하게 변했다. 신생 핫플 대부분이 강북에서 나타났다. ‘아파트 키즈’인 새로운 소비층이 강남과 다른 차별적, 독창적 도시 공간을 원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이상할 수 있지만 그들이 봤을 땐 성수동의 낙후된 공장 지대는 차별적 공간이었다. 익선동 한옥이 허름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차별적 공간으로 다가온 것과 마찬가지다.”

-빨간 벽돌 창고를 개조한 문화 공간은 사실 특별하지 않다. 수십 년 전부터 일본 요코하마나 하코다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같은 서울의 양평동, 문래동에도 그렇게 활용한 공장 창고가 많았고.

“성수동은 두 가지가 달랐다. 먼저 접근성이다. 2000년대 이후 나타난 강북 핫플레이스는 지하철 접근성이 필수였다. 2012년 10월 수인분당선이 선정릉역에서 왕십리역까지 확장돼 성수동에 서울숲역이 생겼다. 강남에서의 접근성이 월등하게 올라간 것이다.”(선정릉과 서울숲역 사이에 압구정로데오역, 강남구청역이 생겼다. 수인분당선 확장으로 성수동은 도곡, 개포, 수서, 분당과도 연결됐다.)

-역시 강남의 소비력인가?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그것만으론 당연히 안 된다. 성수동은 과거 수제화 타운이었다. 수제화 산업이 아무리 망가졌다고 해도 산업적 백그라운드는 도시의 구성 요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수제화 산업은 일종의 패션 산업이다. 주변에 피혁 공장도 있었고. 그런 백그라운드가 있었기 때문에 2010년대 초반부터 젊은 예술가들이 유입돼 공장 창고를 빌려 카페를 열고 패션쇼 같은 이벤트를 했다.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 지금은 성수동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대림창고’(옛 정미소 창고)가 대표적이다. 강남 소비자의 유입 창구인 서울숲역 인근에서 대림창고까지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동네가 뜬 것이다.”

대림창고(서울관광재단 제공)

-업무 지구의 성장은 핫플과는 다른 차원의 변화다.

“2013년 두 젊은 창업자가 회사 입지에 대해 나에게 문의했다. 소셜 벤처를 지원하는 임팩트 투자 회사인 루트 임팩트의 정경선 대표와 임팩트 스퀘어의 도현명 대표다. 나는 낙성대와 성수동을 추천했다. 낙성대는 2호선을 따라 강남 접근성이 좋았고, 무엇보다 서울대가 있었다. 성수동은 강남 접근성이 더 좋을 뿐 아니라 준공업 지역이기 때문에 용적률이 450%에 달했다. 그래서 최소한 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산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들은 성수동을 택했다. 그들은 정말 재미있는 F&B(식품·음료) 회사, 디자인 회사와 함께 들어왔다. 일종의 클러스터, 소셜 벤처의 생태계를 만들었고 그것이 뉴이코노미 타운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것이 다른 핫플과 다른 점이다.”

-뉴이코노미 타운이란?

“초기에는 소셜 벤처 중심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면서 소셜 벤처들과 연관된 사업을 하는 콘텐츠 기반의 플랫폼 기업들이 들어왔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SM, 온라인 패션의 강자인 무신사, 크래프톤 같은 게임 회사들이다. 이를 통해 성수 업무지구는 단순한 소셜 벤처 중심 업무 지구에서 플랫폼 중심 업무지구로 성격이 확장됐다.”

-성수동이 새로운 핫플이란 점도 업무지구 발전에 기여하지 않았겠나?

”함께 진화했다. 뉴욕의 명소인 브루클린처럼 된 것이다. 윌리엄스버그처럼 힙한 카페가 들어오니까 기업들이 브루클린에 들어온 것처럼.(흔히 성수동을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수동은 이제 ‘핫플’의 단계를 넘어섰다.”

-‘핫플을 넘어섰다’는 의미는?

“이제 거의 모든 글로벌 B to C(소매) 기업이 행사를 하거나 팝업 스토어(홍보 등 특정 목적을 위해 단기적으로 운영하는 점포)를 열 때 성수동을 택한다. 세계적 패션 브랜드 디올은 세계 어디에서든지 항상 제일 비싼 곳에 스토어를 열었다. 한국에선 당연히 서울 청담동이었다.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성수동으로 가자”고 해서 갔다가 대박이 났다. 청담동처럼 성수동 서쪽, 갤러리아 포레와 서울숲 트리마제가 있는 부촌 주거 지역에 스토어를 만든 게 아니다. 그곳에서 떨어져 있고 분위기도 다른 2호선 성수역 근처에 세웠다. 이건 엄청난 변화다.”

지난 1월 24일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의 ‘디올 성수’ 매장 앞.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그들은 성수동의 어떤 강점을 본 걸까?

“한국이란 국가 브랜드 파워가 엄청나게 커졌다. 그러면서 성수동 자체가 글로벌, 특히 아시아의 주도적인 힙스터 타운(자신들만의 문화, 패션, 음악을 추구하는 독특한 감성의 동네)이 됐다. 엄청나게 늘어난 유동 인구도 고려했을 것이다.(성수동의 연간 유동 인구는 3억명, 결제 금액은 3조원에 육박한다.)”

-성수동은 더 진화할까?

“한국 패션의 중심이 될 거다. 무신사의 모든 역량이 거기에 섞여 있으니까.”

-무신사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그들이 도쿄 시부야에 낸 오프라인 매장이 지금 장난이 아니다.”

-한국은 대중문화가 대단하지만 패션, 건축 이런 분야에서는 아직이다.

“일본의 선진국 역사가 100년을 넘었다. 그런 축적이 있어서 가능하다. 한국도 같은 길을 갈 거다. 한국 패션은 아직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젠틀몬스터(안경 브랜드)는 거의 프리미엄급이다. K-패션이 한국 문화를 선도하고, 성수동이 그 중심에 설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온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가 많다. 그는 2014년 7월 성동구청장을 맡았다. 서울숲역이 생기고(2012년), 젊은 예술가와 기업가들이 성수동을 바꾸기 시작한(2013년) 직후였다.

“벽돌 공장 자체가 아니라, 성수동을 선택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퍼즐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성수동에 들어온 여러 요소에 선순환을 일으켜 소셜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고 뉴이코노미로 진화하는 데 성동구청의 역할은 상당했다고 본다. PPP(Public-Private Partnership·민관 합작) 모델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야 한다.”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강변에 거대한 녹지 공원인 서울숲을 만들었다. 서울숲을 성수동 발전의 가장 큰 초기 자산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녹지 공간 주는 매력은 당연히 크다. 서울숲은 성수동의 굉장한 가치다.”

-2011년 갤러리아 포레 입주가 시작됐다. 이후 한국 최상류층, 연예인들이 사는 최고급 아파트가 성수동에 들어섰다. 연무장길보다 먼저 한강변이 상전벽해했고, 여기엔 규제를 완화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할이 있었다.

“상류층 타운이 있다는 건 소비력 측면에서 명확한 플러스 요인이다. 동네 이미지에도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지금 성수동의 발전상은 그 수준과 맥락을 넘어서는 것이다. 주말에 성수동 연무장길을 가보면 (상류층 타운 주민이 아닌) 20대, 3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절반 이상 외국인이다. 최고급 아파트 때문에 글로벌 핫플이 된 것은 아니다.”

-서울은 어떻게 진화해야 하나?

“지금 외국인들이 가는 곳을 보면 서울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롯데 타워나 63빌딩이 아니라 성수동, 경복궁, 익선동, 인사동, 북촌, 광장시장, 봉익동 등을 찾는다. 차별적이니까. 도시적, 역사적 맥락에서 서울은 뉴욕만큼 차별적이다. 4대문 안은 서울이 가진 차별적 자산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4대문 밖은 기업가적 마인드로 용적률 1000%, 2000%의 파격적 개발을 해도 좋다. 앞으로 서울은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에 의해 완전히 변할 것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GTX 노선인) 광운대, 창동, 왕십리 등에 지금부터 사람을 끌어들이는 대단한 것들을 심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