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의 조폭 소탕전을 소재로 2012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흥행작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한 장면.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2심 무죄 판결에 대해 잘못 알려진 오해가 있다. ‘죄가 없어 무죄’라 하는 것은 판결문을 잘못 읽은 사실의 오독(誤讀)이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 때 당선 목적으로 돈봉투를 뿌린 혐의로 기소됐다. 강력한 증거가 있었다. 그의 측근 휴대전화에 증언이 차고 넘쳤다. 캠프 내부 인사끼리 “의원 회관 돌아다니며 (봉투를) 처리”했다거나 “저녁 때쯤 전화 올 거예요. 그러면 10개 주세요” “00는 안 주려 했는데 ‘우리도 주세요’ 해서 세 개 뺏겼어”라는 식의 대화를 나눈 것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돈을) 나눠줬다고 영길이 형한테 말했어”라며 송 전 대표에게 보고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할 범죄 기록이었다.

쟁점은 녹음을 증거로 채택할 것이냐였다. 재판부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측근의 다른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입수한 것이어서 ‘별건(別件)’이란 이유였다. ‘적법 절차’를 강조한 판결이었으나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아쉬움이 컸다. 이 측근이 휴대폰을 강제 압수당한 게 아니라 자기 의사에 따라 스스로 검찰에 ‘임의 제출’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적법성은 갖춘 셈인데, 절차적 흠을 이유로 뻔히 보이는 눈앞의 범죄를 덮는 게 옳은가라는 논란이 일었다.

다른 공범 사건에선 재판부 입장이 달랐다. 돈 봉투 살포에 가담한 혐의로 별도 기소된 캠프 내 한 의원은 똑같은 휴대폰 녹음이 적법 증거로 채택돼 1·2·3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들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송 전 대표 사건도 당연히 대법원에 올려 최종 판단을 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대장동·위례·서해 사건처럼 이번에도 검찰은 상고를 포기해 면죄부를 안겨 주었다. 권력 앞에 꼬리 내리는 충견(忠犬) 본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송 전 대표 판결은 그의 결백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증거 수집이 잘못됐으니 혐의가 맞냐, 틀리냐는 판단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송 전 대표로선 재판을 통한 혐의 해소에 실패해 ‘실체적 결백’을 인정받지 못한 결과였다. 그는 돈봉투 의혹을 그대로 껴안은 채 정치 전면에 복귀했다. 출판 기념회를 열고 재보선에 출마하겠다며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독재 시절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를 연상케 하는 부패 정치의 장본인치고는 너무도 당당했다. 반성의 빛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다.

이것은 약과였다. 대통령의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유죄 판결을 받고도 선거판에 뛰어들었다. 1·2심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던 그는 보석으로 일시 풀려난 상태에서 서울·광주·부산·대전을 돌며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대선 주자를 방불케 하는 전국 단위의 광폭 행보였다. 행사엔 국회의장이며 여당 지도부·의원 50여 명이 대거 참석해 “김용은 무죄”를 외쳤다. “정진상·김용 정도는 돼야 측근”이라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실감 나는 장면이었다.

김 전 부원장은 대장동 일당에게 불법 자금 6억여 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에서 그는 현장 부재(不在)의 알리바이를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했다. 1억원을 받았다고 검찰이 특정한 시각, 다른 장소에 있었다며 휴대폰에 저장된 타임라인 기록을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기록이 수정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부원장이 쓰던 다른 휴대폰이 한 대 더 있었다는 점도 감안됐다.

김 전 부원장 측이 위증을 시도한 혐의까지 드러났다. 경기도 산하 기관장을 내세워, 돈 받았다는 시각에 김 전 부원장을 만나고 있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시켰다는 것이었다. ‘블루 콤비 재킷’을 입은 것으로 증언해 달라며 옷차림까지 세세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결백하다면 가짜 알리바이를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김 전 부원장의 방어 논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 검찰의 조작”을 주장하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다. 대법원 선고를 기다리는 미결수(未決囚) 신분으로 6월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이들이 이토록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의 뒷배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 실세는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수사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다. 부산에서 출마하는 전재수 전 해수부 장관은 통일교에서 4000만원 등을 받았다는 진술이 나왔지만 소환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현지 누나’에게 민간 단체 인사를 청탁하겠다고 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김남국 민주당 대변인 수사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는 경기도 안산 출마설이 돌고 있다.

권력이 자기 편을 무조건 감싸고 돌면서 염치 모르는 범죄 연루자들이 활개치는 후흑(厚黑)의 세상이 됐다. 과거 어떤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 정권은 내 편이기만 하면 범죄와도 ‘동행’하겠다 한다. 최민식·하정우가 열연했던 윤종빈 감독의 2012년 영화를 패러디해 지금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런 제목이 될 듯하다. ‘범죄와의 동행: 나쁜 놈들 전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