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령이 안 먹힌다. 북한이 아니라 김어준이다. 김어준이 하는 말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을 움직여 당론이 된다고 해서 지령이라 불렀다. 그가 2023년 매입한 100억원대 건물 주변은 매일 아침 유튜브에 출연하려는 국회의원들의 검정 세단들로 붐볐다. 국회에서 야당에 버럭 화를 냈던 청와대 정책실장에게는 “앞으로 더 세게 하라”는 지침을 줬고, 그의 지시에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큰절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의 왕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정청래 대표가 기습 발표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에 기다렸다는 듯 지원군으로 나섰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김어준이 엄호 사격을 하고 그의 여론조사 회사가 찬성 여론이 높다고 했는데도 논란은 더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까칠한 정 대표에게 불만을 품던 대통령 강성 지지층은 합당 추진을 대통령에 대한 도발로 여겼다. 민주당 지도부보다 김어준이 먼저 합당을 알았다거나 김어준이 조국 대표까지 당에 끌어들여 ‘비명횡사’ 공천으로 밀려난 친문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는 ‘음모론’이 가세했다. 단순 합당이 아니라 차기 민주당 당권, 더 나아가 차기 권력 창출을 위한 시나리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까지 개입하느냐는 불만이었다.

김어준 태도까지 문제가 됐다. 김민석 총리가 서울시장 여론조사에 이름을 넣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변호인을 특검 후보로 추천한 것을 두고도 “걸러내는 건 청와대 민정의 몫”이라며 청와대를 겨냥했다. ‘뉴이재명’으로 불리는 지지층들은 김어준의 오만함에 화가 났다. 유튜브 구독자가 감소했고 덩달아 옆 동네 ‘매불쇼’까지 조국 편을 든다고 ‘조불쇼’로 불리며 유탄을 맞았다.

예상 밖 상황 전개에 김어준은 “권력 초반에 차기 권력을 두고 이렇게 집안싸움이 벌어진 건 처음 본다. 이런 싸움에 ‘이재명’ 명패를 다는 건 반칙”이라고 진압에 나섰다. 민주당 내부의 권력 투쟁에 자신을 이용하거나 개입시키지 말라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집안싸움은 자기가 시작해 놓고 이제와서 뭔 헛소리냐”는 비난 댓글만 수천 개 달렸다. 과거 개딸들이 이낙연 전 총리 측을 비난할 때 쓴 ‘수박’이라는 멸칭이 그에게 붙었다.

지금의 김어준을 성장시킨 토양은 ‘묻지 마 음모론’ ‘닥치고 지지’ ‘쫄지 마’ 이 세 가지다.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사드 같은 민감한 사안에 팩트보다는 “뭔가 냄새가 난다”는 음모론을 지폈다. 선거 때는 ‘닥치고 지지’와 ‘쫄지 말라’는 행동 지침을 내렸다. 성인용품 판매로 시작해 지금의 100억원대 건물을 올린 것은 이 지령과 교리에 열광한 신도들의 열성적 조공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신도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김어준과 정청래, 조국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 “김어준 유튜브에 쫄지 말라”며 ‘탈(脫)김어준’을 하고 있다. 김어준을 상왕에 오르게 한 그 방식 그대로다. 자신이 숭배하던 교주라 해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대신 나를 가르치려 들자 그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는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떠올리게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지만, 이 괴물은 자기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며 그를 공격한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나는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며 항변했다. 이제 개딸들과 뉴재명은 김어준에게 “난 당신이 설계한 음모론과 팬덤으로 무장한 채 싸우고 있다”며 자기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존 신도들의 버림을 받거나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다시 광란의 춤을 추는 것뿐이다.

20여 년 전 유시민과 김어준, 정청래 대표 같은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자 당시 민주당 중진들은 “철없는 것들”이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진영 논리와 팬덤으로 무장한 신흥 세력은 민주당 주류를 ‘난닝구’로 공격하더니 어느 덧 안방을 차지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역전됐다. 김어준을 벗어나자는 ‘탈어준’이 벌어지고, 유시민 씨는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을 “미친 짓”이라고 했다가 “비정상”이란 비판을 받았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 팬카페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물론 이 생소한 현상에 국민의힘이 환호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자신들의 지리멸렬로 민주당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생각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야가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 정권을 주거니받거니 할 수 있다는 여유가 ‘탈어준’과 ‘뉴이재명’ 현상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