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방문객들이 길게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뉴시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중박)을 찾은 관람객은 650만7483명이다. 1945년 개관 이후 80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 관람객 600만명을 돌파했다. 연간 관람객 600만명은 프랑스 루브르, 로마 바티칸, 영국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에 이어 전 세계 5대 박물관에 드는 규모다. 그사이 누적 관람객도 1억명을 넘어섰다. 금동반가사유상 2점만 독점 전시한 ‘사유의 방’, 조선 왕실 의궤를 집중 조명한 ‘왕의 서고’ 기획전 등 각종 전시가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고, 지난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과 박물관 굿즈 구매 열풍 등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덕도 컸다.

그러나 ‘국중박 관람객 600만명’ 시대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던졌다. 관람객 급증으로 전시 환경이 나빠졌다는 불만부터 터져 나온다. 하루 관람객이 루브르보다 많은 4만4000명을 기록한 날도 있다. 이른 아침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오픈런’ 현상이 빚어지고 주차장과 식당 이용이 어렵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국중박이 관람객을 상대로 전시 환경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거의 모든 항목에서 미세하지만 만족도 하락 현상이 나타났다. 재작년 86.6%였던 ‘전시장 동선의 편리성’ 만족도가 지난해 조사에선 85.5%로 하락했고, ‘전시장 관람 질서 유지’ 항목도 85.3%에서 83.9%로 떨어졌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금 추세라면 올해 700만명을 넘어설 수도 있어 오히려 걱정”이라고 했다. 국중박은 이명박 정부의 국민 문화 향유권 확대 공약에 따라 2008년 5월부터 2000원이던 관람료를 폐지하고 무료 관람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무료(특별전 제외)로 국민에게 개방해 왔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관람객이 해마다 폭증하면서 유료화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난해부터 힘을 얻고 있다.

유료화를 찬성하는 측은 연간 방문객이 1000만명을 넘어서자 입장료를 올려 900만명 아래로 떨어뜨린 루브르처럼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입장료를 올리자고 한다. 국중박은 몸집만 커졌을 뿐,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경쟁하려면 유료화로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중박의 소장품 구입 예산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39억여 원에 불과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연 817억원)이나 영국박물관(연 200억원)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액수다. 이래서는 명품 유물이 즐비한 외국 박물관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보급 유물이 시중에 나와도 확보할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곤 한다. 2023년 경매에 나온 국보급 항아리인 백자청화오조룡문호 낙찰가는 국중박 유물 구입 예산의 두 배 가까운 70억원대여서 입찰에 참가하지도 못했다.

세계 주요 박물관에 한참 못 미치는 외국인 관람객 비율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국중박의 외국인 관람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 루브르와 바티칸은 외국인이 전체의 70%를 넘는다. 대만국립고궁원이나 이집트대박물관도 50%를 넘나든다. 하나같이 세계인이 반할 만한 소장품과 수준 높은 전시 서비스로 외국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그래픽=김현국

세계 주요 박물관은 유료화가 대세다. 영국박물관과 스미스소니언 아일랜드국립박물관 등 영미권 일부만 무료화 정책을 고수한다. 입장료 수입은 유물 확보와 전시 환경 개선에 쓰인다. 루브르는 지난 1월 입장료 인상으로 확보한 2000만유로(약 340억원)를 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모나리자 전용 전시실 조성 공사에 투입하기로 했다. 2016년부터 국립박물관을 무료로 개방해 온 스웨덴도 “무료화로 고품격 전시만 어려워졌다”며 2023년 다시 유료로 돌아섰다. 지금까지 무료 정책을 지켜온 영국박물관도 재작년부터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입장료를 받자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유료화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최대한 많은 국민이 문화 향유권을 누릴 수 있으려면 지금처럼 무료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료화는 저소득층에게 진입 장벽을 치게 돼 문화 향유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만 심화시킬 것이란 비판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유료화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유홍준 관장도 “관람객을 줄이기보다는 관람 편익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유료화를 추진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유료화에 대비한 사전 준비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국중박은 올 연말까지 관람객의 연령·성별·직업·방문 시간과 횟수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위한 고객 정보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온라인 예약과 예매, 비대면 전자 검표, 모바일 티켓 발권 등이 가능한 시스템도 내년 중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최종 유료화 여부와 도입 시기는 시범 운영 이후 결정하기로 했다. 유료화를 보는 국민 시선에도 변화 움직임이 보인다. 문화부 산하 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해 ‘박물관·미술관의 방문 형태 선호도’를 설문조사했더니 ‘관심 있는 기획전은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겠다’는 응답(40%)이 ‘입장료가 없는 상설전의 소장품을 보겠다’는 응답(32%)보다 높았다. 수준 높은 전시라면 기꺼이 돈을 내겠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평일 야간 관람을 활성화하고, ‘30분 동안 국보만 보기’ ‘초등학교 2학년과 함께 보는 문화유산’ 같은 맞춤형 도슨트를 제공하는 등 새로운 전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 무료 관람 정책은 문화유산의 예술적 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보는 풍조를 낳고 관람 태도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진지한 관람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유료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무료로 운영하면 오히려 격이 떨어지고 싸게 느껴질 수 있다”며 유료화에 힘을 보탰다.

한국박물관협회가 지난 연말 마련한 ‘국립박물관 유료화 서비스 개선 방안’ 세미나에 참석한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외국 박물관들이 유료화로 운영되는 현실에서 국중박의 무료 유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유료화는 국립박물관에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 부담을 줄이고 문화재 보존·디지털화·연구조사에 투자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만 유료화를 시행하더라도 국립기관으로서 공공성은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청소년·노인·저소득층·장애인 등은 무료로 하거나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 루브르가 입장료를 크게 올리면서도 10대 청소년에게는 국적 불문 무료 입장하게 하고 EU 지역에 한해 26세 이하 청년도 무료 혜택을 주는 등 세심한 요금 정책을 쓰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 방침에 따라 17년 넘게 지속해 온 국립중앙박물관 무료 관람 정책이 ‘국중박 관람객 600만명’ 시대를 맞아 수술대에 올랐다.

3000원, 5000원, 1만원…국중박 입장료, 얼마가 적절할까?

그래픽=김현국

국중박 관람료를 유료화한다면 가격은 얼마로 하는 것이 적절할까.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국립박물관·미술관 관람료 정책 분석’에서 관람료를 3000원, 5000원, 1만원 가운데 어느 가격 안이 가장 합리적인지 1500명에게 물었다. 응답자의 55.8%가 ‘3000원 이하’를 적정 입장료로 꼽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복궁 관람료가 3000원이란 사실도 ‘3000원’을 관람객이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유홍준 관장은 “유료화를 하더라도 연간 관람객 500만명 이상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조사에서 입장료를 3000원으로 하면 약 510만명 선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무료화 직전 국중박 입장료 2000원에다 2025년까지 약 41.9%인 누적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대략 2800원대란 점도 3000원 안에 힘을 싣는다. 문제는 3000원으로 할 경우 취약층 무료·할인을 제외하고 예상되는 수입이 연 64억여 원에 불과해 박물관 운영이나 소장품 구입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5000원으로 정하면 연 수입은 88억5000만원으로 높아지지만 관람객은 420만명대로 줄어든다. 현재 주요 외국 박물관의 입장료가 2만~4만원이고 일본의 도쿄국립박물관이 1만원 정도다. 우리도 1만원으로 할 경우 연 수입은 130억원을 넘어 박물관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만 관람객이 330만명으로 급감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