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메뉴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다보스 연설이다. 카니 총리는 이 연설에서 이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중심의 강대국 질서가 ‘균열(rupture)’됐다며 중견 국가 및 소규모 국가들이 단결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미·중·러 등 강대국 정치를 대체하는 중소 국가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카니가 말하는 중견 국가 중에는 한국이 당연히 중요한 비중으로 언급되고 있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은 ‘중국의 시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 문제 등 미주(美洲)의 보전(保全)과 확보에 열중하며 관세와 무역 제재로 동맹·우호 국가들을 압박해 이들이 중국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마가(MAGA·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동맹국을 죽 쑤어서 중국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격이라는 것이다.
핵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더 이상 미국의 핵 방어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캐나다, 독일, 폴란드, 한국 그리고 일본까지도 핵을 갖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면서 “내가 그 나라의 국민이라면 나라도 핵 억지력을 갖자고 주장할 것”이라고 썼다. 더 이상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면 스스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세계 정세 변화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의 이런 논평과 논조들이 의미하는 것은 ①세계 자유 진영 리더로서의 미국 역할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②한국 등 중진국들이 미국 의존 체제에서 벗어나 핵 보유를 포함해 스스로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그런 변화의 와중에서 이득을 챙기고 있고 결국 중국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핵심 국가 정상들의 방중(訪中) 러시가 진행되고 있으며 중국의 군사적, 경제적 약진상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결국 트럼프의 독불장군 정치가 2차 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판도를 흔들어 유럽을 불안하게 하고 중국을 부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반세기 넘게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해 온 한국의 안보와 경제는 질적, 양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에 의존하고 미국에 얹혀갈 것인가를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이재명 정권으로서는 지금을 미국 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는 기회로 잡고 그것을 지렛대로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겠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이 가야 할 길과 취해야 할 선택이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앞으로의 시대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또 북한 포용이냐 적대냐처럼 이분법적 선택으로 갈 수 없다. 우리의 선택은 한국의 생존과 발전이라는 명제 위에 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기준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국방의 자립이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한국을 북핵의 공포에서 해방시키는 결정적 무기는 우리도 핵(核)을 갖는 것이다. 미국과 구(舊)소련이 체결한 START 협정은 엊그제 아무런 연장 조치나 설명 없이 그 유효 기한이 끝났다. 새로운 조약이나 기능의 설정이 필요한 시점에서 핵 문제는 앞으로 미국과 러시아에 국한하지 말고 폭을 넓혀 사실상 보유국과 핵 보유 능력 국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협의의 필요성이 미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바로 이런 시기적 이점에 올라타야 한다.
둘째 우리는 중국의 부상(浮上)을 외면할 수 없지만 그것이 미국을 대체하는 쪽으로 밀고 가서는 안 된다.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하지만 물리적 국익에 부합한다고 정신적, 민족적, 역사적 사실까지 몰각할 수는 없다. 그것이 ‘미국에서 중국으로’의 이분법적 접근이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한국을 이끌어준 것에 대한 보은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의 자존의 문제다.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미국은 한국에 인종적·민족적 모멸감을 주지 않는다. 중국은 우리에게 두 가지 모두이다.
이 국가 안보의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나라에는 좌파 한쪽의 목소리만 있다. 여당만 있고 야당은 없다. 친북, 친중의 눈치만 살아있고 균형과 절충의 목소리는 없다. 야당은 지금 세계의 흐름은 안중에 없고 내부 싸움에 영일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북한의 핵보다 더 무섭고 미국의 관세와 압박보다 더 심각하며 ‘중국의 부상’보다 더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