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가고 싶어 하고 미국에서 살고 싶어 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 미국을 향한 동경(憧憬) 덕분에 미국은 세계의 인재(人才)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세계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며칠 전 “잠자리가 뒤숭숭하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미국을 되돌아보게 됐다. 친구의 딸은 이민세관단속국(ICE) 대원이 며칠 간격으로 두 시민을 살해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산다. 딸은 간간이 들리는 총소리에 불안해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나가야 되나’를 묻는다고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종잡기 어려운 외교 정책에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기우뚱거린다는 뉴스를 질릴 정도로 들어왔다. 이런 미국발(發) 연쇄 반응은 역설적(逆說的)으로 지금까지의 세계 질서가 미국에 얼마나 크게 의존해 왔던가를 깨닫게 만든다.
한국은 미국 도움으로 북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고 미국 주도(主導)의 자유무역 체제 속에서 오늘의 번영을 일궜다. 한국이 만약 중국이나 소련 영향권 아래 국가였다면 민주화가 가능했을까. 트럼프의 미국이 과거의 그 미국이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받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미국 외교 정책에 관여해 온 로버트 케이건은 ‘미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America Made)’에서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혜택을 받은 나라로 독일·일본·EU를 꼽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구호(口號)에 가깝게 도달한 나라들이다. 모두 국방 예산이 GDP의 2% 이하다. 미국은 3.5% 정도다.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서 국방비를 복지 예산으로 돌려 가능했던 성과다. 국방 예산을 증액하라는 트럼프의 강압(强壓)에 복지 예산이 먼저 칼질을 당했다.
80년대 이후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너나없이 세계 문제에 대한 개입(介入)을 줄이고 산업 경쟁력 회복과 교육 정상화 등 내정(內政) 개혁으로 예산을 돌리겠다고 공약했다. 일부 외교 정책 전문가들도 ‘외교는 안방에서 시작한다’면서 개입 축소를 뒷받침했다. 그들이 제시한 대안(代案)은 전쟁이 나면 그 지역 국가가 먼저 책임을 지도록 하고 미국은 밖에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흐름에선 트럼프 외교 정책이 돌발적(突發的) 사태는 아니다.
그런데도 100만달러를 내는 사람에게 영주권을 주겠다는 트럼프의 비자 판매 사업 영업 실적은 신통치 않다. 미국이 ‘살고 싶은 나라’인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든 것이다. 1950년대 유행어에 ‘어글리 아메리칸(Ugly American)’이라는 말이 있었다. ‘추악한 미국인’으로 번역되곤 했지만 ‘거들먹거리는’ 또는 ‘밉상스러운’이란 뜻이 함께 담긴 말이다. 죽었던 이 말이 트럼프 덕분에 되살아나고 있다. ‘캐나다를 합병하겠다’ ‘그린란드를 돈 주고 사겠다’는 막말을 수시로 내뱉고 푸틴·시진핑·김정은·네타냐후에게 일방적 애정 공세를 퍼붓는 데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다.
1945년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미국 주도 세계 질서를 흔히 ‘규칙(국제법)에 토대를 둔 세계 질서’라고 불렀다. 강대국·중진국·약소국이 섞여 사는 세계는 원래 혼돈(混沌) 그 자체다. 옳고 그름보다 힘의 우열(優劣)이 발언권과 결정권을 행사한다. 국제법은 이 벌거벗은 세계에 신사복 정장(正裝)을 입힌 거나 비슷하다.
미국이 그 힘을 반드시 옳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동독·폴란드·체코·헝가리 민주화 흐름을 탱크로 깔아뭉개고 2차 대전 종전 후 동독과 북한의 공장 설비를 멋대로 뜯어간 소련보다는 낫다는 세계의 평가가 냉전(冷戰) 시대 소련을 누를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이 됐다. 지금 트럼프는 ‘착취 외교’라는 비난을 들으며 신사복 정장의 윗옷을 벗어 내던졌다. 미국이 패권 국가로 등장한 이후 바지만 입은 대통령은 트럼프뿐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회사처럼 운영한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정부 기관은 문을 닫아버린다. 동맹도 수지 맞는 장사인가 아닌가를 우선으로 평가한다. 세계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이 이렇게 변했다. 문제는 미국 주도 질서의 대안(代案)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빈자리를 중국이 메울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남(南)중국해 바위에 흙을 얹어 영토로 만들고, 수시로 대만 포위 공격 연습을 하고, 우리 바다 서해에 말뚝을 박는 나라가 중국이다.
겉똑똑이처럼 명분만 좇아서는 안 되는 세상이다. 전시 작전권 반환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탈환해야 할 고지(高地)일까. 중국 견제에는 필요하지만 북한과의 핵 충돌에 휘말려들기 싫어하는 트럼프에겐 입을까 벗을까 망설이는 바지가 아닐까. 한번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