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 때였다. “정치 신인인데 바로 대통령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사실 검찰이라는 곳이 엄청난 정치가 이뤄지는 곳 아니냐. 경력 20년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고 답했다. “그 정치랑 이 정치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자칫 토론이 될 것 같아 넘어갔다. “정치 신인 맞다. 그래서 주변 분들과 많이 대화하고 경청하겠다”는 기대했던 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검찰, 대학, 병원, 기업에서도 정치는 작동한다. 검찰총장, 대학총장, 병원장, CEO 같은 분들을 보면 정치인 못지않은 정치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균질한 엘리트 집단을 상대로 하는 정치와 재산, 학력, 배경이 천차만별인 대중 정치는 수영장 수영과 바다 수영만큼 다르다. 시장에서 국밥 몇 그릇 먹는다고 속성 체득되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회장 선거는 좋은 정치 훈련장이다. 물론 국민의힘에도 중고교 때 공부 잘해 반장, 전교회장 한 분이 많다. 그러나 민주당처럼 과·단과대·총학생회·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같은 다단계 조기 교육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상급 단위 학생회로 올라갈수록 유권자는 늘어나고 선거 전략도 차별화해야 한다. 평소에는 개량 한복 입고 반미(反美)와 장군님 타령이나 하던 사람들이 선거 때만 되면 알록달록 꽃단장에 등록금 인하, 최신 자판기, 학생 식당 인하 같은 복지를 들고 나왔다. 민족해방 같은 구호 대신 ‘사람사랑’ ‘생활진보’ 같은 포근한 말을 썼다. 선거가 뭔지 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는 전대협 2기, 3기였다. 학교는 달라도 조국통일위원장과 총학생회장, 전대협까지 이어진 운동권 인맥에 2004년 ‘탄돌이’라는 이름으로 배지를 같이 달았다. 정치 경력이 20년 같지만, 실제 이들의 정치는 대학 입학 때인 40여 년 전에 시작됐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시민 단체, 지역구에서 눈만 뜨면 정치 궁리만 했다. 평소 거친 언행의 정 대표가 왜 자기 쇼츠에는 국밥이나 먹고 동네 아줌마들과 춤추는 장면을 올리고, 술 한잔 못 하는 한 원내대표가 어떻게 수많은 인맥을 관리할 수 있을까. 이들은 어릴 때부터 유권자 눈높이에 맞추고, 적과의 전선을 그어 내 편을 최대화하는 정치를 몸으로 체득해 왔다. 40년 이상의 득표 노하우와 데이터가 축적된 정치 머신, 요즘 식으로는 ‘폴리티컬 AI’가 탑재된 정치인들이다.
반면 장동혁 대표는 2020년에 정치를 시작해 2022년에 국회에 들어왔다. 그전에는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을 거쳐 판사를 했기 때문에 정치 경력은 5년 정도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고시 출신으로 기재부 차관을 지내다 8년 전 정치를 시작했다. 둘 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엘리트 집단에서 승승장구했다. 인생 1모작은 판사·관료, 인생 2모작은 정치인이다. 지금 대한민국 보수 정당은 경력 10년 이하 정치인들이 지도부를 할 만큼 기반이 취약하다. 물론 국힘에도 지방 의원부터 수십 년 정치를 해온 분이 많지만,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지역구에서만 통한다. 지난 세 번의 총선 공천을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미래를 생각한 인재 발굴을 하지 않고 대통령과 가깝다고, 당장 표가 된다고 공천을 줬다.
서울 최고 부자동네 지역구 의원이 최근 장동혁 대표 단식으로 유명해졌다. 의사인 그는 간호사를 보낸 국회 관계자에게 “우리가 필요한 건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라며 큰소리를 쳤다. 이 순간 전국의 간호사와 그 가족들 표가 우수수 날아가는 것을 그는 모를 것이다. 민주당의 정치 AI라면 의사 표와 간호사 표, 갑과 을의 심리가 투표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했을 것이다. 국힘은 이혜훈 후보자의 지명 철회에 환호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그런 사람을 5번이나 공천한 것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국밥 먹고 춤추다 갑자기 정당 해산하라며 정색하는 민주당 대표를 상대할 수 있다.
경력 40년 민주당 지도부를 경력 10년 이하 야당 지도부가 맞서고 싶다면 특별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상식을 깨는 혁신과 협력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딥시크의 저비용 AI와 화웨이의 자체 칩 개발 및 부품 국산화로 돌파했다. 엔비디아 GPU가 없으면 개발할 수 없다던 AI를 오픈 AI의 5% 비용으로 성공시켰다. AI는 돈 싸움이라는 고정관념에 도전한 혁신 때문에 가능했다. 중국 IT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국가적 차원에선 협력하며 힘을 키웠다. 우리 야당은 반대다. 민주당의 ‘생업형 정치’에 맞서겠다는 국힘의 ‘부업형 정치’는 혁신과 협력이 아닌 퇴행과 분열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