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1878~1938)의 독립운동은 다른 독립 지사와 달랐다. 그의 독립 노선은 거짓과 거짓말을 퇴치(退治)하는 것으로 일관(一貫)했다. 임금 머릿속, 벼슬아치 가슴속, 백성 마음속 거짓과 거짓말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봤다. 거짓과 거짓말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정직(正直)을 세워야 나라가 다시 설 수 있다고 했다.

도산의 어록(語錄)은 거짓과 거짓말에 대한 증오로 가득하다.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하였으니 내 평생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 하리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말자. 꿈에라도 거짓말을 했거든 깊이 뉘우치자.’ ‘나라 일은 신성한 일이요, 신성한 일을 한다면서 재물(財物)을 취(取)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거짓이 협잡을 낳고 협잡이 불신을 낳고, 불신이 패망(敗亡)을 낳는다.’

흥사단 창립자 도산 안창호 선생. /조선일보 DB

안창호는 자신의 말대로 살다 갔다. 청년 시절 대동강 변에서 거짓을 규탄하는 연설로 나라 잃은 백성의 마음을 흔들고, 독립운동을 위해 건너간 미국 LA 근교에선 조선인 거주 마을 공동 화장실을 매일 청소하면서 정직을 전도(傳道)했다. 사상과 노선 갈등으로 분열된 상하이(上海) 임시정부로 건너가선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모시는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역설했으며, 일본 경찰에 체포 압송(押送)돼 국내에 들어와선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殉國)하는 날까지 거짓을 몰아내고 정직을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승만은 다시는 다른 나라 노예가 되지 않을 부강한 민주공화국을 꿈꿨고, 김구는 물질의 위력(威力)이 아닌 높은 문화로 존경을 받는 문화국가 건설의 포부를 지녔다. 그들의 꿈과 포부는 달성됐거나 달성하는 과정에 있다. 통일의 대업(大業)은 물거품이 됐지만 되찾은 나라는 한국을 배우겠다고 건너온 유학생으로 붐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창호는 불우(不遇)한 독립운동가다. 공들였던 거짓과 거짓말을 몰아내는 필생의 사업은 식민지 치하에서 피지 못하고 시들었다. 도산이 살아 돌아와 한 해 7000억달러를 수출하는 수출 대국(大國)이자 청년 예술가들이 세계를 무대로 삼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문화 국가가 된 조국 모습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가슴이 울렁거리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철렁할 것이다.

안창호가 다시 찾은 조국의 공용어(公用語)는 거짓말이다. 그는 거짓을 나라가 패망(敗亡)한 원인이라 했다. 정치의 심장 여의도의 표준말도 거짓말이다. 여야 정당 대표는 거짓말로 연설한다. 도산은 나랏일은 신성(神聖)한 일이므로 재물을 탐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가 태어난 시대엔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았다. 여의도는 공천(公薦)을 파는 암시장(暗市場)이다. 시의원 단가(單價)가 1억원이다. 곤충에도 해충(害蟲)과 익충(益蟲)이 있다. 여의도엔 익충보다 해충이 더 많다.

전(前) 대통령은 국민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바보 같은 거짓말을 했다. 야당은 그를 다시 대통령으로 모시자는 ‘어게인(again)파(派)’ 수중(手中)에 있다. 지금 대통령의 여의도 시절 가장 큰 방패가 거짓말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의 여러 요직은 대통령이 피고인이었던 시절 변호사들이다. 여당 국회의원 상당수도 그 출신이다. 벼슬로 변호사 비용을 대납(代納)한 것 아닌가. 대통령은 외국 언론과 회견에서 야당 대표 시절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생각이 달라지면 말이 달라져야 하고,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정직은 다시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도산이 젊은 시절 먼저 깨우친 사람들은 미처 깨우치지 못한 사람을 깨우치는 걸 사명으로 알았다. 먼저 깨우친 사람이 요즘 말로 지식인이다. 그랬던 지식과 정직은 서로 담 쌓고 사는 세상이 됐다. 삼권분립은 헌법 교과서 안에서 사망했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만 남았다. 그런데도 정권 편 헌법학자는 꿀 먹은 벙어리다. 헌법 교과서가 죽으면 헌법 선생도 실직(失職)이다. 소금이 썩은 것이다.

거짓과 거짓말은 상류에서 하류로 떠내려온다. 국민도 거짓과 거짓말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수천억 원 돈벼락을 맞은 김만배씨를 보라. 도산의 눈엔 패망의 씨앗으로 비칠 것이다.

중학생 시절 함석헌 선생(1901~1989)이 시골 학교에 강연을 왔다. 다른 내용은 다 까먹었으나 이 구절은 남았다. ‘민족이 겪은 고난(苦難)과 고초(苦楚)가 보물(寶物)이다. 숫돌처럼 늘 곁에 두고 마음의 칼날이 휘지 않도록 벼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 숫돌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