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하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다짐이 떠오른다. 나는 2020년 ‘윤석열을 주목한다’는 칼럼에서 사실상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건 그의 용기와 저돌성, 신인다움을 거론했다. 지금은 다 일장춘몽 같은 얘기이고 나의 기대는 허망하게 끝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 새삼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은 윤 전 대통령이 이제야말로 본격적으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정치’를 실현해 보일 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듯이 그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도록 종용하기 바란다. 그를 추종하는 이른바 친윤 또는 윤어게인을 향해 사람에게 충성하지 말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윤석열’에 충성하지 말고 민주주의의 대의(大義)를 그르치는 좌파 정치의 전횡을 막는 전선(戰線)에 합류해 야당의 분열을 막고 통합의 길을 가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의 야권은 말 그대로 지리멸렬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갈기갈기 찢어져 그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윤석열의 어설픈 계엄극(劇)으로 인해 그의 정부에 종사한 사람들은 줄줄이 법정에 끌려다니고 그 사이에 정권을 잡은 좌파들은 안보·국방·경제·사법의 체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그 와중에 국민들은 매일같이 법정에 끌려다니는 그와 그 부인의 초라한 몰골을 드라마 보듯 보아야 한다. 그는 왜 저러고 있는 것일까? 무죄를 얻어내려고 법정 투쟁이라도 하는 것인가? 온 국민이, 또는 보수 성향의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그를 구출이라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는 아직도 그의 계엄이 ‘적절했다’고 믿고 있는 것인가? 자신이 재판에서 이기면 정권이 되돌아오고 그의 수하들이 모두 풀려날 것으로 보는가? 그는 계엄이라는 것이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성공하면 구국이고 실패하면 내란으로 몰린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2026년 6월 3일 치러질 지방선거(제9회)가 정확히 5개월 남았다. 이재명 정권에 대한 첫 심판이자 좌파 정권의 앞길을 가늠할 시험장이다. 형식은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지만 보수 또는 국민의힘의 재기 가능성을 시험하는 의미 못지않게 이 정권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크다. 지난 대선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뒤엎는 중대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윤석열 몰락에 대한 국민의 반응을 응집하는 채점표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李) 정권은 윤석열 내란 재판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돌려가며 선거 때까지 끌고 가 윤석열 감표(減票)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 뻔하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실패한 계엄으로 실축해 정권을 내주고 보수를 분열시킨 것도 모자라 지방선거의 감표 요인으로까지 이용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국힘과 보수 세력은 여전히 친윤, 반윤 하면서 반목하느라 여념이 없다. 도대체 윤 전 대통령은 누구 편이고 친윤은 뭐고 반윤은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윤 전 대통령으로서는 법정에서 이기는 것보다 이 선거, 즉 국민 심판에서 이기는 것을 사실상의 무죄 투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의힘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데 기여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이기려면 보수 우익 세력이 단결해 좌파 정권의 무도한 전횡과 법 무시, 안보 해체 등을 저지하는 것이 필수다. 그러려면 윤 전 대통령은 그나마 남은 보수를, 국민의힘을 또다시 쪼개지 말고 하나로 가도록, 자신이 그 길에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를 밟고서 넘어가라고 간절히 소리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갈라져서 친윤·반윤 대립하지 않고 하나로 뭉치도록 남은 정치력을 가동해야 한다. 그가 그 어떤 정치나 사람에도 충성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어떤 충성도 기대하지 말아야 하고 또 받지 말아야 일관성이 있다.
그가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채널을 돌리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지만 법이 추상같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자존감보다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사디즘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한때나마 그의 등장을 주목한 사람으로서 그가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윤석열’로 인해 한국의 보수가 망가지는 것은 더더욱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