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이재명 정권은 들어선 지 6개월도 안 돼 북한에 대한 우리의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대북 전단을 금지하고 전방의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더니 민간의 대북 접촉과 개별 관광을 허용하는 등 이제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대치(對峙) 국가가 아닌 것으로 가고 있다. 거기다 북한 인권 보고서 비공개, 국가보안법 폐지, 마침내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시킬 뜻을 비쳤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태도도 너무 게임적(的)이다. “대북 방송을 왜 합니까? 쓸데없이 그런 바보짓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돈 들잖아요.” 군사훈련 대목에서도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것이 한·미 군사훈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별로 안 좋아하는, 돈 드는 합동 군사훈련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표현은 국가 대사를 논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세계에 없다. 전쟁만 없다면 지금 당장 군대고 훈련이고 미사일이고 없어도 된다. 그 돈 국민 복지에 쓰면 얼마나 행복한가. 문제는 상대방이다. 북한은 매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인민 전부를 군대화(化)하다시피 하면서 무기 개발에 온 국력을 쏟고 있는 판인데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장해제해야 하는가. 돈 아끼려고?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론’의 방점은 두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라는 데 있는데 왜 좌파 사람들은 편리하게 ‘두 국가’만 부각시키는 것인가.

반미(反美)는 우리나라 좌파 세력의 정체성이고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좌파의 데모는 반(反)제국주의, 주한 미군 철수, 한미 동맹 파기로 점철돼 왔다. 오늘날 이재명 정권의 국무총리와 여당 대표가 과거 운동권 시절 미국 문화원과 미 대사관저 침공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전과자라는 것도 오늘날 이 정권의 대미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트럼프의 미국도 어제의 미국은 아닌 것 같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언제까지나 ‘공정하고 자애로운 미국’이 아니며 어쩌면 ‘약탈적 일방주의’의 나라인지도 모른다고 했다(한겨레신문). 적어도 지금 트럼프가 대표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 보인다. 문 교수는 ‘미국 없는 한반도’를 언급하며 한·미 동맹 파기나 주한 미군 철수를,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다자 기구를 희망 사항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 없는 한반도’로 가려면 반드시 ‘중국 없는 한반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미국을 대체하는 것이 중국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미국 쪽에 남는 것이 현명하다. 적어도 미국은 한반도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반면에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토적, 제국주의적 군림은 수백 년, 수천 년을 이어온다. 중국은 21세기 지금도 한국을, 한반도를 저들의 속국이었다고 공공연히 자랑하고 또 자만하고 다닌다(시진핑 주석).

우리가 6·25 전쟁 이후 미국의 안내로 민주주의와 세계 경제에 눈떠 오늘에 이르렀다는 보은의 입장에서가 아니더라도 중국보다는 미국이다. 중국은 선린의 ‘이웃’ 이외에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다자기구도 기만적이다. 그 어떤 상대적 관계도 지난 2000년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역사를 잊은 한국에는 ‘중국’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땅의 좌파는 중국을 추종하며 반미가 곧 민족 자주인 양 하는 사고에 빠져 있다. 다만 지금의 이재명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탈미(脫美)로 가는 것보다 중간 단계로 미국과 중국을 병행하는 전략을 포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군사 동맹에서 첨단 기술 동맹 등을 포괄하는 복합 동맹으로 발전”시키고, 중국과의 경제 협력도 병행하는 쪽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트럼프의 미국이 한몫을 하고 있다. 트럼프는 언제나 돈타령이다. ‘우리가 도와줘서 한국이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안보 값을 내라’는 식이다. ‘분쟁 해결의 명수’라는 허망한 타이틀에 집착하는 트럼프는 한국의 안보는 자기가 김정은과 만나면 모두 해결되는 것이고, 한국과 주한미군의 가치는 대(對)중국 전선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으로 믿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좌파의 헌법파괴 전횡이나 민주주의 가치의 무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지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저 입만 열면 한국 잘 살고 자기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는 말만 반복할 따름이다.

이 정권은 그것을 100% 이용하고 있다. 한국의 이 정권과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이해가 다르면서도 잘 맞는 궁합(odd couple)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