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식 비서실장과 김현지 제1부속실장이 10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는 제목부터 K-드라마 냄새가 물씬하다. 내용도 훈훈하다. 서울 소재(所在) 한 대학 출신 선후배들이 동문(同門)의 취업을 위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이야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대학 출신이다. 인사 청탁이 문제라지만, 윤석열 시대는 안 그랬고 문재인 시대는 안 그랬나. 쏟아지는 비판에도 두 대통령은 꿋꿋하게 버티며 마지막 날까지 끝내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드라마는 어느 여당 의원이 여의도 국회 본회의 중에 용산 비서실 후배에게 인사 청탁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걸로 시작한다. ‘회의 중에 그럴 수 있냐고….’ 이 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장은 회의 중에 보좌관 이름을 빌려 문자로 주식 거래를 하다 사진기자에게 딱 걸렸으나, 탈당(脫黨)했다는 것 말곤 뒷소식이 없다. 청탁 메시지를 받은 용산 비서관도 의원 시절 회의 중에 코인 거래를 하다 적발됐으나 경찰인가 검찰에 한 번 출두한 걸로 끝이었다.

대학 선후배들이 대통령실을 움직여 동문 출신을 앉히려 한 자리는 민간 단체다. 연봉이 2억~3억원 사이라고 한다. 민간 단체 인사에는 원칙적으로 비서실장인 ‘훈식이 형’이나 대통령 제1부속실장인 ‘현지 누나’가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실제는 모든 인사가 정권의 뜻대로 이뤄지는 걸 자기 눈으로 보았기에 여당 의원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과 정부 요소요소엔 ‘이재명 사건’ 변호사들이 박혀 있다. 검찰에서 대통령 관련 재판 진행을 보고받는 민정비서실에도 여럿 있다. 자신의 성추행·탈세·내란죄 담당 변호사들을 법무장관 등 사법(司法) 요직에 임명한 트럼프 인사 방식과 많이 닮았다.

‘훈식이 형·현지 누나’ 드라마 시청률이 치솟은 건 ‘현지 누나’ 덕분이다. 그는 이재명 정권에서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대통령을 28년 동안 보좌해 왔다는 것 말고는 국민이 아는 게 없다. 왜 힘이 센지, 왜 대통령이 그렇게 이례적(異例的) 인사를 하면서까지 대중에 노출시키지 않으려 하는지, 그러면서도 직원 회의에서 이름을 거명하며 창의성 있는 업무 처리를 칭찬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는지 모든 게 수수께끼다. 심지어 학력·나이·고향도 안개 속에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 속편(續編)이 만들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대통령은 12월 3일을 ‘국민 주권의 날’로 정하겠다고 했다. “법정 공휴일로 해서 국민이 1년에 한 번쯤 이날을 회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작년 12월 3일은 ‘충격의 날’이었다. 기자도 마찬가지여서 묵은 스크랩북을 뒤져 계엄 선포와 해제 다음 날 쓴 기사를 찾았다. 글머리가 이랬다. “국가 지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은 끝났다. 대통령이란 직명(職名)이 얼마나 오래 붙어 있을지 모르지만 지도자 자격은 잃었다. 국민 마음에서 지워졌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라는 희비극(喜悲劇) 이전의 지도자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평가하는 국민들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계엄 선포 닷새 전 갤럽이 조사한 윤 대통령 지지도는 19%, 잘못한다가 72%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지도다. 야당의 무더기 탄핵과 무더기 입법(立法)을 무더기 거부권 행사로만 대처하는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과 부인의 탈선(脫線) 행동에 대한 비난이 상승작용한 결과다. 냉정한 국민 판단은 정당 지지도에서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도 32%, 민주당 33%였다. 국회에서 다수(多數) 독재로 무더기 탄핵과 일방적 입법을 강행하는 야당의 책임을 같이 물은 것이다.

작년 갤럽이 차기 지도자에 대한 호(好)·불호(不好)를 마지막으로 물은 게 6월 조사였다. 이재명 대표는 33%를 얻었고 그가 싫다는 국민이 58%였다. 그는 자신이 연루된 5개 재판 결과에도 쫓기는 처지였다. 윤석열의 위헌적(違憲的)이고 무모하고 어리석은 비상계엄 선포는 이 모든 걸 엎어버렸다.

지금 이재명 정권은 사법부를 포위 공격하고 위헌적 법안을 마구잡이로 찍어내고 있다. 대통령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른 척하듯 삼권분립의 파괴 사태로 몰아가고 있다. 행동대장은 정청래 민주당 대표다. 그가 국무총리·장관이었다면 2번이고 3번이고 탄핵됐을 것이다.

12월 3일은 ‘대통령의 날’로 제정하는 것이 맞다. 현직 대통령이 전임자(前任者)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은 그 길을 걷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자신의 언행을 가다듬는 날로 정해야 한다. 이재명 지지도를 62%로 치켜세운 것도, 윤석열 지지도를 19%로 갈아엎은 것도 다른 국민이 아닌 같은 국민이라는 무서운 사실을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