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려이 11월 20일 법정에서 증언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법정에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 대해 "이 자식이 이거 대체 방첩사령관이란 놈이 수사의 시옷자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sbs 인터넷 캡처

얼마 전 대학에 있는 분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 이야기였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이후 3년 9개월 동안 재판을 받은 뒤 징역 20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탄핵 과정에서도, 긴 수감과 재판에서도 제대로 된 자기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지지자들조차 “답답하다”며 가슴을 쳤다. 그런데 윤석열 재판과 비교해보니 박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를 파면시킨 직권남용 같은 ‘범죄’ 역시 윤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하찮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윤석열 재판은 공개됐고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재판을 본 분들은 윤 전 대통령의 어투와 태도에 화가 나고 그로 인해 수감된 수많은 군인에 대한 연민만 커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재직 시절과 다름없이 수많은 말을 했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 특유의 큰 손짓과 한 손을 책상에 올린 채 계속되는 고개 돌림, 가끔 반말까지 섞어가며 장황하게 자신을 항변했다. 특검과 판사의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겠다”면서도 “다만 참고로 이 말씀은 드리겠다”며 본안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남미에서 열린 APEC과 G20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멤버도 아닌데 포퓰리즘과 좌파 정부 정상들을 대거 초청해 놨다. 잘사는 나라에 원조해 달라는 얘기들이었다”고 했다. 자신은 중요한 외교에 집중할 테니 한덕수 전 총리에게 국제회의 참석을 권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초청된 개도국 정상들을 무슨 ODA(공적개발원조) 구걸이나 하는 걸로 보는 인식과 그걸 말로 내뱉는 만용에 경악했다. 한국이 다자회의에 정식 멤버로 인정받은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계엄 당일 국민의힘 의원 일부에게 전화한 것에 대해 그는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판사는 “급박한 상황인데 고생 많다 말하려 전화했느냐”고 물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그때 뭐 저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고 답하더니, 자신도 민망한지 웃었다. 전 국민이 마음 졸이고 특전사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던 그때, 대통령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화가 나는데 웃기다”는 친여 유튜브 조롱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윤 전 대통령 말은 계엄 별거 아니었다는 취지로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려 들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 대해선 “이 자식 이거, 도대체 방첩사령관이라는 놈이 수사의 ‘시옷’ 자도 모르고, 아무리 야전통이라 해도 어떻게 이런 놈이 방첩사령관을 하나”라고 했다. 이 동영상은 며칠 뒤 여인형 앞에서 그대로 재생됐다. 계엄 수행이 불가능하다며 무릎까지 꿇었고, 장군이자 가장인 사람에게 ‘놈’ ‘자식’이라니. 국정원 홍장원 전 차장에게 “피고인, 지금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라는 타박까지 들었다. 잡범이든 대통령이든 무죄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정치인 체포와 국회·선관위에 군을 출동시킨 책임을 국방장관과 부하들에게 돌리는 모습에선 전직 대통령의 품위나 자존감은 찾을 수 없었다.

계엄 준비가 안 됐다는 여인형 해명도 걸러 들어야 하지만 그가 전한 당시 상황을 보면 대통령과 군이 이래도 되나 앞이 캄캄하다. 대통령의 계엄 담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여인형은 한숨을 쉬며 “나는 그때 슬리퍼 신고 있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방첩사 요원들이 체포 대상을 김어준이 아니라 가수 김호중으로 알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말이길 바랄 뿐이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재판을 통해 죗값을 더 치를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민주당은 그가 1월에 석방될 것이라고 위기감을 불어넣으며 ‘내란 완전 종식’을 선거 때 주장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어게인’과 ‘윤네버’ 세력의 충돌로 난리다. 민주당은 향후 몇십 년 윤석열을 우려먹을 것이고, 국힘은 이대로라면 간판을 내리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더 많은 분이 윤석열 재판을 보기 바란다. 1인에게 무한 권력을 부여한 대통령제가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 군과 공직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 목격할 수 있다. 야당은 ‘체제 전쟁’ 같은 관념적 논쟁을 할 시간에 재판을 보며 답을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몇 년 뒤 재개될 또 다른 전직 대통령 재판을 어떻게 대처할지 참고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석열 재판은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에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한 ‘현대판 징비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