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자칭 ‘큰 개미’였다. 28세에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주식에 입문했다. 첫 투자 종목은 하필 ‘작전주’였다. 세력이 붙어 있는 줄 모르고 사들여 얼떨결에 3배를 벌었다. 그 후로도 소형주 투자로 성공을 거두며 주식에 빠져들었다. 변호사 본업 대신 하루 종일 단타 거래만 했다. 그것도 성에 안 차 선물·옵션까지 손댔다가 IMF 사태 때 깡통을 차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정신 차려 우량주 장기 투자로 본전을 찾고 최고 15억원까지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었다.
이 대통령의 주식 애착은 각별했다.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조선·방산주를 2억여 원어치 사들인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선거 패배의 충격에도 주식에 손대고 있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랐다. 그가 산 종목은 그 후 4배나 올랐으니 보통 안목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었다. 올 대선에서도 그는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얼마나 자신만만하던지 주가 상승을 장담한다며 투자를 공개 권유할 정도였다. “말을 해도 안 믿으니…”라며 자기 돈 1억원을 펀드에 넣고는 “더 오르기 전에 빨리 참여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투자 독려는 계속됐다. 취임 8일째, 그 바쁜 일정을 쪼개 한국거래소부터 찾았다. 주가 부양에 진심이란 메시지였다. 민주당은 ‘코스피 5000 특위’를 만들고 정권 출범 한 달 만에 상법 개정안을 초고속 처리했다. 주가가 한때 급락하자 “숨 고르기”라고 마사지하며 언론에 ‘붕괴’란 표현을 쓰지 말라고 주문할 지경이었다. 금융위 부위원장이 “레버리지 투자의 일종”이라며 ‘빚투’를 권장하는 사달까지 벌어졌다. 증권사 영업 사원을 방불케 했다.
이 정권에 주식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었다.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한 통치 프로그램이자 지지율을 높일 비장의 선거 전략이었다. 의도는 적중했다. 반도체 초호황까지 겹치며 코스피 4000을 돌파하자 개미들은 환호했다. 대장동 스캔들을 비롯해 대형 악재가 잇따라도 정권 지지율은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주가는 이 정권이 내세울 유일한 경제 성과였다. 집값 급등, 고용 침체, 원화 급락 등등 온갖 정책 실패 속에서 오로지 증시 호황에 목매는 모양새였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식 또한 정치적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주식에도 좌파적 처방을 꺼내 들었다. 부(富)의 총량, 즉 ‘파이’를 키우는 대신 대주주 몫을 소액주주로 돌리는 분배적 조치를 밀어붙였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했고,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는 가야 할 방향이나 지나치게 과도한 경영 족쇄였다. 단기적 효과는 있겠지만 중장기적 기업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컸다. 한편에선 노란봉투법 같은 반기업 규제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몰아쳤다. 이 대통령의 지론인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증시 버전 같았다.
대통령으로선 주식 약자(弱者)를 위해 판을 깔았으니 서민들이 돈 좀 벌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미들의 투자 실력은 기대에 못 미쳤다. 정권 출범 이후 ‘빚투’ 했다가 반대매매 당한 개인이 8만명에 육박했다. 코스피가 2700에서 4000 선으로 오르는 동안에도 매달 1만여 명꼴로 주식을 털렸다는 뜻이었다. 증권사 개인 고객의 60%가 11월 상반기 중 평균 940만원 손실을 보았다는 집계도 나왔다. 급등락 변동장에서 개인은 리스크 관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 정권은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진 어떻게든 상승세를 이어가려 작심한 듯하다. 세제 혜택, 성장 펀드 투입 같은 호재를 계속 공급하겠다며 불을 때고 있다. 그러나 주가는 결국 경제의 거울이다. 온갖 반시장 규제로 기업을 억누르면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순 없다. 인위적 부양책이 만든 거품은 꺼질 수밖에 없고 그 타격은 개미부터 직격할 것이다. 상승 국면에서도 재미 못 본 개미들인데 하락장으로 바뀌면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 불 보듯 뻔하다. 정부 장담을 믿고 뒤늦게 뛰어든 개미들에게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야당은 주가 상승세가 꺾일 경우 정권에 역풍이 불 것이라 한다. 순진한 기대다. 나는 이 대통령이 그런 비관적 시나리오까지 계산에 넣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사 주가가 떨어져도 정치적 맥락에선 나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란 의미다. 주식에 목줄 걸린 개미들로선 주가가 하락할수록 부양책을 갈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시혜(施惠)에 더욱 매달릴 것이고, 이는 좌파 정치에 유리한 구도다. 온 국민을 주식 판에 몰아넣은 전략이 주효했다.
국민이 가난해질수록 국가에 의존하고 공적(公的) 포퓰리즘에 손 벌린다는 것이 좌파의 세계관이다. 원인·결과가 뒤집힌 이 정권의 ‘주식 주도 성장’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정권엔 ‘꽃놀이패’일지 모르나, 국가 경제로선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