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재판’ 중계가 이뤄지면서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한덕수 전 총리 사건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 33부 이진관 부장판사다.
주로 듣기만 하는 보통 판사들과 달리 그는 거침없이 질문한다. 한 전 총리에게 “국무총리였던 피고인은 국민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나”라고 물었고, “국무위원도 피해자”라는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는 “(국무회의에) 가서도 아무 말씀 안 했느냐”고 질타했다. ‘법정 소란’으로 감치 재판을 받고도 석방된 김용현 전 장관 변호인단에게 ‘감치 결정을 집행하겠다’는 결기도 보였다.
그를 두고 “한덕수에게 청천벽력 떨어졌다” “허튼짓 차단하는 이진관” 등의 쇼츠(짧은 영상)가 쏟아진다. 여권 지지자들은 “사이다 재판” “진짜 판사가 나타났다”는 칭찬을 퍼붓고 있다.
반면 단호하지 못한 재판부는 멸시 대상이다. 증인에게 절차를 친절하게 안내한 지귀연 부장판사에게는 행사 사회자 같다며 ‘MC귀연’이라는 쇼츠가, 변호인들의 항의를 ‘예~ 예’ 하며 넘긴 한성진 부장판사에게는 ‘일하기 싫은 예예 판사’라는 멸칭과 함께 쇼츠가 생긴다.
법정의 권위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판사의 단호한 언사로 세울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한 현직 판사는 “유죄를 예단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진영 대립이 심한 사건은 더 무색무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 재판’으로 낙인찍히면 상대방의 정치적 행동을 조장하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이 감치 후 풀려나 유튜브에서 재판부를 원색 비난한 게 이런 징표다.
사실 이런 현상은 3대 특검의 재판 중계를 사실상 의무화한 법안이 통과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긴 재판을 몇 분, 몇 십 초로 요약하는 순간 기록 수십만 쪽과 증인 수십 명은 사라지고 자극적 장면만 남는다. 실제로는 이 판사들이 보이는 것과 반대인 결론을 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캐릭터만 부각한 영상은 그런 가능성을 차단한다.
지성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영상에서는 재판도 ‘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감치를 두고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도 재판 중계의 부작용”이라고 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도 연방 대법원과 대부분의 연방 형사 법정에서 재판 중계를 금지한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6조 청구’를 ‘0원’으로 만든 비결은 자극적인 법정 언사가 아니었다. 관련 재판에서 한국 측의 변론권과 반대 신문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절차가 이유였다.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반드시 재판 중계를 통해 실현될 필요는 없다. 인격권 침해, 사법의 오락화 등 부작용이 더 크다. “재판정이 X판 나 버렸네” “보고 있으면 속 터지는 사법부의 실태가 알려지도록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등 법정을 멍들게 하는 ‘쇼츠 사법’을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