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은 김만배씨다. 올해 대통령 된 사람도 있고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지만 시대를 상징하는 면에서 만배씨와 겨룰 수 없다. 그가 다윗도 아니고 대한민국이 골리앗도 아니지만 둘의 대결은 성서 속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거인을 쓰러뜨린 다윗의 무기는 돌멩이 하나였다. 만배씨가 가진 무기도 입(口) 하나다. 그는 입을 벌릴 필요도 없었다. 입을 열기 전에 국가가 먼저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1심 재판에 대한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7000여억 원의 불법 이익이 김만배 일당 재산으로 확정됐다. 만배씨는 대장동 사업에 자본금 5000만원을 댔다. 나머지 3억원은 만배씨 가족과 공범(共犯)들이 마련했다. 공범들은 제쳐놓고 만배씨 개인 수익금만 살펴보자. 그가 설립한 깡통 회사 같은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두 회사 앞으로 각각 577억원·1415억원의 배당금이 들어왔다. 이와 별도로 아파트 분양 이익금 3690억원과 자산 위탁 수수료 140억원을 받아 총 5823억원의 수익을 냈다. 1심 판결은 이 가운데 428억원을 추징금으로 토해내라고 했다. 결국 5395억원이 그의 차지가 됐다. 청년 실업자들은 분노했을까 절망했을까.
대장동 사업 같은 대규모 택지 개발은 ‘토지 매입’ ‘인허가’ ‘시공’ ‘분양’의 4단계로 진행되고 처음 두 단계를 마치면 큰 고비는 넘은 걸로 친다고 한다. 1단계·2단계는 만배씨 동업자인 성남개발공사가 도맡다시피 했다. ‘시공’ 단계에선 성남시가 주민 세금으로 아파트 주변 환경 정비를 해주는 친절도 베풀었다. 당시 성남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이다.
만배씨와 이 시장 관계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빈번했던 만배씨의 대법원 출입 기록이다. 그는 어느 대법관 방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그 대법관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통령에게 유죄 선고를 내린 하급심 판결을 뒤집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수사 경험 많은 검사 출신 변호사는 만배씨가 주범(主犯)이라 해도 공범이 1000억원 버는데 만배씨만 그 5배를 챙긴다는 게 범죄 세계 현실과 어긋난다 했다. 그러면 주범과 공범 사이에 금이 가 이탈자가 생긴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만배씨 몫에 드러나지 않은 인물의 몫이 포함됐을 수 있다고 봤다. 검찰도 이 부분을 캤겠지만 만배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범죄 세계에서 입이 헤픈 사람은 제값을 받지 못한다. 만배씨가 입을 다물었기에 그의 ‘입값’도 크게 뛰었다. 헤프게 입을 놀린 건 대장동 사업을 두고 스스로 ‘4000억원짜리 도둑질’이라고 부른 정도다.
만배씨에 비해 검찰은 비겁했다. 그는 도둑질을 해도 낮에 당당히 했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를 제기할 시한(時限)을 불과 몇 시간 앞둔 깜깜한 밤에 도둑처럼 움직였다. 항소 포기를 지휘한 검찰총장 대행은 항소 포기 배경으로 ‘윗선’을 언급하다 꼬리를 내렸다. 법무장관은 ‘신중히 검토하라’고 했을 뿐이라고 했다. 항소를 하면 대통령 재판이 불리해진다. 항소를 포기하면 대통령이 유리해진다. 이 상황에서 ‘항소하겠다’는 검찰에 ‘신중히 하라’ 했다면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초등학생 문해력(文解力)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다.
법무장관은 신중하다는 평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윗선 대통령실을 쳐다보게 된다. 민정수석실에는 대통령 사건 변호사가 3명 있었다. 민정비서관·법무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으로 명찰은 달랐지만 주(主) 임무는 대통령 재판 관리다. 한 사람은 법무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옮겼다. 그들이 대통령에게 무슨 보고를 올렸겠는가. ‘서울에 계시면서 항소 포기 소동을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부재중(不在中)에 저희가 처리하는 게 낫겠습니까.’ 항소 포기 소동으로 대통령 외교 성과를 깎아 먹는다는 비판은 순진한 이야기다. 대통령의 부재는 ‘의도된 연출’이다.
입을 봉(封)해야 할 사람이 김만배 일당만은 아니다. 측근 중의 측근 정진상·김용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믿고 오늘을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재판에서 빼줘야 한다. 그러려면 검찰이 공소를 포기해야 한다. 불법 송금 문제 대통령 관련 여부에 대해 입을 열락 말락 하다 중형(重刑)을 선고받은 이화영 전 경기 부지사 구조(救助)도 시급하다. 하나하나가 법과 전례(前例), 사법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事案)이다.
결과적으로 김만배씨는 고된 외교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할 이재명 대통령에게 ‘대장동 대통령’이란 딱지를 붙였다. 그렇게 간(肝) 큰 사람은 그 말고는 없다. 만배씨를 ‘올해의 인물’로 추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