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룡산성

폭탄 제조는 경상도에서 했지만 그 폭발은 전라도에서 이루어졌다. 그 폭탄의 이름은 ‘동학’이다. 그 폭발은 양반·상놈 차별을 흔들었다. 동학이라는 폭탄의 원료를 제조한 경주 사람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 그는 천출(賤出)이었지만 머리는 비상했고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했다. 최제우는 대략 20세부터 30세까지 10년 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행상을 하면서 자신만의 세상 보는 관점을 형성했던 것 같다.

그가 경주 용담(龍潭)에서 종교적 깨달음을 얻고 포교를 하다가 탄압을 받자 고향을 훌쩍 떠났다. 여기저기를 거쳐서 도착한 곳이 전라도 남원, 교룡산성(蛟龍山城)에 있는 은적암(隱蹟庵)이었다. 남원의 별칭은 용성(龍城)이다. ‘용의 도시’였다. 그 이유는 시내 한가운데 있는 교룡산(蛟龍山) 때문이었다. 교룡은 이무기를 가리킨다. 아직 뿔이 없고 여의주가 없는 상태가 이무기이다. 산 높이는 518m라서 높지 않지만 교룡의 기운이 뭉쳐 있는 산이라 하여 예로부터 군왕이나 시대를 이끌 인물이 나오는 터로 여겨졌다.

고려 말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무찌른 이성계가 ‘용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산이 교룡산이다. 교룡의 여의주에 해당하는 바위가 남원 신계리 바위 미륵불이다. 이 미륵불 근처에서 갑옷 입고 활을 쏘는 모습의 구리로 만든 이성계 인형이 근래에 땅속에서 발굴되기도 하였다. 당시 이성계가 대권을 잡기 위해 비밀리에 파묻어 놓았던 ‘밀교적 주술(密敎的 呪術)’의 사례로 본다.

교룡산의 양쪽 솟은 봉우리는 교룡의 뿔에 해당한다. 이제 막 뿔이 나오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이 뿔이 조금만 더 자라면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며 용비어천가를 부르게 된다. 경상도 경주 용담에서 솟아오른 최제우가 교룡이 승천하기 직전 단계인 전라도 남원의 교룡산으로 온 것도 예사로 여겨지지 않는다. 어떤 ‘영적인 부름’이 있었지 않나 싶다.

교룡의 심장에 해당하는 터인 은적암에 반년 정도 머물며 ‘검결(劍訣)’을 짓고 ‘칼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은적암 터는 교룡산의 8부 능선쯤에 있었는데, 그 터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전경이 대단하였다. 지리산 주 능선인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 중봉, 영랑대까지 병풍처럼 늘어선 30여㎞의 전망을 파노라마처럼 모두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금대암도 지리산 전망이 좋은 터이고, 상무주암도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볼 수 있는 전망이지만 은적암 터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가장 호쾌하고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