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를 마치고 이웃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고려인 문화의 날’ 행사가 러시아 연해주에서 열린다고 했다. 혹시 참관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 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얼떨결에 도반들의 북방 일정에 합류했다. 추석 연휴 끝자락 주말까지 포함해 3박 4일을 할애했다. 하지만 행사 당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이튿날로 미뤄져 우리는 일정에 쫓겨 정작 본행사엔 함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연해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150여 년 이주 역사를 겉으로나마 살펴볼 기회는 되었다. 국제 역학 관계의 변화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디아스포라’의 전형적 사례다. ‘남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는 비가 내린다(南山起雲 北山下雨)’는 운문문언(雲門文偃·864~949) 선사의 옛 시가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녹록지 않은 여건에도 지역사회의 중심인 문화센터와 민족 학교를 운영하면서 이주 역사를 정리하고 선현들의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문화를 공유하면서 현재의 삶을 가꾸고 있었다. 그들만의 배타적 공동체가 아니라 주변 이민족과 화합하고 동화하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물론 공용어는 러시아어다. 중국어를 사용하는 만주 동북 3성 지역 한인은 ‘조선족’이라 한다. 같은 민족인데도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가리키는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함경도 지방 출신이 많다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필요에 따른 문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블라디보스토크행 직항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편가량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러시아·우크라 전쟁 여파로 2시간 걸리는 직항로는 재개통하지 못하고 베이징에서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심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게다가 베이징 표준시는 서울보다 1시간 늦고 연해주는 1시간 빠른 탓에 두 나라를 하루 안에 경유하려니 시간표마저 헷갈린다. 현실만큼이나 시곗바늘까지 혼란스럽다. 세상은 관계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재설정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니 생각이 다르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충돌이 생긴다면 설사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남보다 못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또 지나친 지연·학연·혈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히려 공동선을 해치고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경우도 익히 보았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타고난 업(業)에 차별이 있을지라도 함께 살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연해주 방문에서 배웠다. 방외지사(方外之士·세상 밖의 선비)도 시대와 장소가 달라지면 우국지사(憂國之士)로 바뀐다. 관광객으로 러시아 정교회 사원을 찾은 우리도 어느새 순례자로 변신한다. 두 손을 모아 동북아시아의 평안과 교류 활성화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