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6일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에서 환영나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영리한 정치인이다. 미련했던 전임자(前任者) 덕분에 더 영리하게 비치는지 모른다. 영리한 정치인은 낚싯바늘 하나로 두 마리 고기를 낚으려고 한다. 이런 낚시법은 동맹 간 외교 문제에서부터 검찰 없애기, 법원 흔들기, 주가(株價) 띄우기, 기업 옥죄기 등등의 내정(內政) 문제까지 일관(一貫)됐다. 외교에선 ‘실용 외교’라고 부르고, 국내 정치에선 ‘실용 정치’라고 한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헌법·법률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도저로 검찰을 허물고, 경찰 산하 각종 수사 기관을 신축(新築)·증축(增築)하자 대통령이 점잖게 나섰다. ‘국민 편익(便益)을 중요시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라.’ ‘그래도 대통령은 (정청래보다) 낫다’고들 했다. 그러나 여당 대표의 막무가내는 더 심해졌고 결국 여당 뜻대로 됐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깔아뭉갤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는 대통령이 말만 그렇게 하지 속뜻은 나와 같다고 확신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대표가 자기 정치 기반인 개딸 지지를 믿고 정말 대통령을 우습게 봤을 때다. 불과 1년 전 국회의원 공천에서 ‘비명(非明)파’를 전원 횡사(橫死)시킨 대통령이 이걸 용납할 리 없다. 결국 ‘그래도 대통령은 낫다’던 사람들은 미련을 버렸고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下落)했다.

‘추미애 법사위(法司委)’는 온갖 신(新)기록, 진(珍)기록을 수립하며 ‘여의도 동물원’ 신세가 됐다. 추 위원장은 야당이 자기 당 간사를 뽑겠다는 것까지 표결로 가로막았다. 과거 법사위는 ‘원내 상원(上院)’으로 불렸다. 법과 관례와 전례(前例)를 중시한 위원회였다.

정청래 대표는 추 위원장과 함께 대법원장을 청문회·국정감사에 불러내려고 별의별 수단과 온갖 언어 폭력을 동원했다. 헌법에 없는 재판 ‘4심제(審制)’까지 들먹이며 위협했다.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有罪) 취지로 판결한 대법원장에게 앙심을 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앙심 때문에 헌법의 3권분립 원칙을 유린한다면 의원 배지를 단 폭도(暴徒)와 뭐가 다른가. 대통령과 여당이 내란 척결 목청을 높일수록 밖에선 한국이 내란 상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대통령은 이 장면에서 헌법 강의를 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선 국민이 최고 권력을 갖고, 그다음이 선출된 권력, 그 아래 임명된 권력 순(順)이다.’ 위험한 생각이다. 북한 국명(國名)은 “조선‘사회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다. 그들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한다. 한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민주’에는 ‘대의(代議)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란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대의’와 ‘자유’가 증발하면 3권분립이 무너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경계선도 허물어진다.

트럼프 등장 이후 한국은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위협받는 나라로 변했다. 김정은이 시진핑·푸틴과 전체주의 국가 단합 대회를 여는데 한미 동맹에선 톱니 망가지는 소리가 났다. 트럼프 취임과 이재명 대통령 취임이 거의 맞물려 있으니 현재 양국 관계에는 ‘트럼프 요인(要因)’과 ‘이재명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트럼프 요인은 다 알고 있다.

그럼 이재명 요인은 무엇일까. 왜 트럼프는 APEC 참석 순방(巡訪)에서 한국은 아침에 왔다가 그날 밤 떠나는 ‘건성 방문’에 그치고, 일본엔 2박 3일 일정을 잡았을까. 트럼프의 일본 일정은 전(前) 총리는 떠나고 새 총리는 뽑히지 않은 일본 정치 공백(空白) 상태에서 결정됐다. 관세 협상도 경제 규모와 외환 보유고를 감안하면 EU·일본에 비해 유독 한국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 외환위기 재발(再發)을 막기 위한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 제의조차 그렇게 박절(迫切)하게 뿌리치는 것일까.

수수께끼는 낚싯바늘 하나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대국(大國)을 낚겠다는 ‘이재명식’ 강대국 외교 전략과 일정한 인과(因果) 관계가 있다. 미국은 한국 안보·경제의 사활(死活)이 걸린 동맹국이고, 중국은 미래와 관련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이런 두 나라를 상대하는 강대국 외교도 ‘동시(同時)’가 아니라 ‘선후(先後)’가 있어야 한다. 미국과 관계를 먼저 다지고 어렵더라도 그 바탕에서 중국과 관계를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용 외교’는 ‘고립(孤立) 외교’가 된다.

이재명 정부 내부와 민주당에는 ‘나라가 독립한 후 독립운동한 사람’과 ‘나라가 민주화된 뒤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득실댄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면 이들과 거리를 두는 결단·지혜·용기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