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을 상징하는 겨레의 탑에서 겨레의 집으로 가는 길에 ‘백련못’이란 연못이 나오는데 다리 난간에도 플래카드가 줄줄이 걸려있다. ‘친일파 역사밀정 김형석을 파면한다’ ‘뉴라이트 식민사관 김형석 OUT’.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수시로 지나간다.

독립기념관 입구에 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문구는 ‘독립기념관 사유화 독립운동 역사 훼손, 친일역적 김형석을 즉각 해임하라’. 민주노총이 건 것이다. 독립기념관을 상징하는 겨레의 탑에서 겨레의 집으로 가는 길에 ‘백련못’이란 연못이 나오는데 다리 난간에도 플래카드가 줄줄이 걸려있다. ‘친일파 역사밀정 김형석을 파면한다’ ‘뉴라이트 식민사관 김형석 OUT’.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이 수시로 지나간다. 독립기념관장이 친일역적, 역사밀정이라니. 아이들이 여기서 무슨 교육을 받겠나.

독립기념관은 국민성금으로 만든 국민 자산이다. 1980년대 초 아직 변변치 못했던 시대에 국민들이 490억 2432만 5009원을 모았다. 필자도 중학생 때 참여했다. 이런 역사적 공간이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난장판이 됐다. 독립기념관장실을 점거한 시위대는 추석 당일인 6일 겨레의 집 광장 앞에 차례상을 차리고 차례까지 지냈다. 이런 게 사유화다.

(천안=뉴스1) 이시우 기자 =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파면을 촉구하며 48일째 점거 농성 중인 역사독립국민행동이 추석인 6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있다. 2025.10.6/뉴스1

이들은 김 관장의 광복 80주년 기념사 중 ‘광복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란 부분을 문제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선 “역사 쿠데타” “역사 내란” “신(新)친일파”라고 했다. 연합국 승리로 우리가 식민지에서 해방된 건 역사적 사실이다.

지난 1일 독립기념관에서 김 관장을 만났다. 직원이 주변을 살피면서 ‘모처’로 필자를 안내했다. 김 관장은 “관장실을 사용 못한 지 42일째다. 밖에 나가면 유튜버들이 앞뒤로 따라붙는다. 생중계까지 한다. 독립기념관 경내에 있는 관장 숙소에 드론을 띄운 적도 있다”고 했다.

-광복 80주년 기념사 때문인가?

“그 때문만은 아니다. 작년 8월 8일 독립기념관장 취임 전날 이 지역 국회의원(민주당 소속)이 광복회관에서 취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후 오늘까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만이 아니다. 서울에 사는 손주가 동네에서 ‘친일파 뉴라이트 김형석 사퇴하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할아버지가 왜 친일파냐’며 울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선 돌아가신 어머니, 아내, 아들, 자부, 손자, 손녀까지 신상을 털어 올리고 ‘한국에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고 협박했다. 경찰에 고소했다. 작년 8월 관장 결정 후 내내 있어온 일이다. 8.15 기념사를 구실로 시위가 격화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실 지난 8월 23일 독립기념관 입구에서 열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퇴진 시위. 김 관장이 취임한 작년 8월부터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독립기념관엔 지금 ‘친일역적’ ‘역사밀정’ 등 김 관장을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왜 이렇게 집요하게 반대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13대 관장이다. 전임 12명 중 10명이 독립운동가 후손인 광복회 회원이었고, 2명이 역사 연구자였다. 흔히 얘기하는 보수 정부는 주로 후손을 뽑았고, 진보 정부는 연구자를 뽑았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부이니까 후손을 뽑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유력했던 독립운동가 후손이 면접 인터뷰에서 탈락했다. (그를 밀었던) 광복회에서 이를 번복하려 했다가 실패하자 (나에 대한) 비난이 시작됐다.”

(김 관장을 제외한 연구자 출신 관장 2명은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김삼웅 전 서울신문 주필과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한시준 전 단국대 교수다. 이들이 재임했을 땐 지금과 같은 요란한 반대 시위가 없었다.)

-기념사 내용, 특히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 부분을 그들이 문제 삼을 줄 몰랐나?

“예상했다. 그래도 내야 할 메시지였다. 나는 일관되게 ‘역사가 국민 분열의 도구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역사는 국민 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미국의 원자탄 두 발로 일본이 패망하고, 그 결과 해방된 것은 세계사적 시선이다. 이런 견해를 갖는 국민이 절반이다. 독립 운동의 결과로 광복을 얻었다는 민족사적 견해를 가진 국민도 절반이다. 함께 소개한 것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얘기해야 한다. 올해는 광복 80주년 아닌가. 광복의 진정한 완성은 통일이다. 남북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서로 다른 시선을 포용해야 한다. 그런데 앞부분만 잘라내 독립 투쟁을 비하했다고 비난한다.”

-이를 두고 집권당 대표가 “역사 쿠데타”이라며 “역사 내란 세력도 척결하겠다”고 했다. 원대대표는 “매국노”라며 “역겹고 수치스럽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을 쫓아내려고, 우선 나를 타깃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김 관장의 역사관이 문제라고 한다. ‘뉴라이트’라는것이다.

“뉴라이트는 일반적으론 보수로 전향한 운동권을, 역사학계에선 식민지 근대화론을 말한다. 나는 운동권 출신도 아니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말한 적도 없다. 자리를 차지하려고 뒤집어 씌운 것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등의 항의를 받으며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09.08 /남강호 기자

-그들은 두 가지를 문제 삼았다. 먼저 김 관장이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정부로 건국된 것이 아니라 1948년 건국됐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 출범에서 시작해 1948년 8월15일에 완성됐다. 몬테비데오 협약이 정한 국가의 4대 요소, 영토·국민·정부·주권에 부합한 때는 1948년 8월15일이다. 29년 동안 건국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이 주장의 뒷부분만 잘라내 ‘1948년 건국이 완성됐다고 했으니 당신은 뉴라이트’라며 공격한다. 나는 건국절 제정 주장을 해본 적 없다. 오히려 반대했다.”

-다음은 김 관장이 관장 면접 인터뷰 때 일제 당시 한국인 국적을 일본이라고 답한 것을 문제 삼는다.

“이와 관련해 유일한 국내 논문이 있다. 한양대 이승일 교수의 논문이다. 그는 논문에서 ‘일본 국적의 외지인으로서의 조선인’이라고 정의했다. 일본 국적인데, 실제론 외국인처럼 차별받았다는 것이 결론이다. 당시 국적이 필요한 때는 해외 여행할 때 정도였다. 국제 법적으로 나라가 망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본 국적을 받고 나간 것이다.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로 올림픽에 나간 것도 그래서 그런 것이고. 그렇게 빼앗긴 국적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닌가. 당시 우리는 일본 국민의 대우를 받지 못한 일본 국적의 외국인이었다.”

-역사관 비판이 안 먹혀들어서인지, 요즘엔 인신 공격을 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에서 기독교 예배를 허가했다며 사적 유용이라고 비난하는데.

“서울 종교교회 이용익 장로가 선친인 독립지사 이강래 선생의 자료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지난 3.1절에 기념관에서 기증 자료로 ‘말모이, 국어의 씨앗을 열매 맺다’란 주제로 행사도 열었다. 그 분이 지난 5월 기증 자료를 보고 싶다고 교회 분들과 함께 기념관을 찾았다. 교회 분들이니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강의실 중 빈 곳을 잠시 열어드렸다. 고마운 기증자에게 그런 편의도 못 봐주나? 그걸 사적 유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장로에게도 경위를 물었다. 이 장로는 “선친의 독립운동 자료 130점을 기념관에 기증했다. 신도들과 외부 예배 행사를 선친 자료가 있는 기념관에서 연 것이다. 기증자가 기증 자료를 보고 현장에서 예배를 본 게 특혜인가. 플래카드가 잔뜩 붙어있는 독립기념관을 선친이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는가. 너무 한심하다.”고 말했다.

-ROTC 동기들에게 독립기념관 공간을 내줬다며 사유화라고 비난한다.

“독립기념관에서 문화탐방 행사를 연 동기 120명에게 컨벤션홀을 1시간 동안 빌려줬다. 그들 중 합창단이 있어 공연을 연 것이다. 독립기념관 컨벤션홀 4시간 대여료가 25만원이다. 1시간을 사용했으니 대체 얼마를 유용했다는 것인가? 독립기념관장은 재량에 따라 시민들에게 시설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할 수 있는 감면 규정이 있다. 취임 후 컨벤션홀 사용이 80여 회였는데 10여 회를 규정에 따라 무상으로 빌려줬다. ROTC 합창단때도 이 규정에 따랐다. 규정에 따르면 배임이란 말인가.”

-본인이 어떻게 관장이 됐다고 생각하나?

“독립기념관이 개관한 첫해 국민 660만명이 다녀갔다. 이 숫자가 작년에 160만명으로 줄었다. 학생과 군인을 제외하면 일반 관람객은 절반도 안 될 것이다. 입장료를 안 받으니 이것도 불확실한 숫자다. 교통도 불편하고, 시설도 오래되고, 이대로 가면 독립기념관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찾는 기념관을 만들 수 있을까? 면접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선대의 업적을 강조했지만 나는 독립기념관의 미래에 대한 답을 던졌다.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어떤 구상이었나?

“독립기념관엔 120만 평의 광활한 부지가 있다. 아름다운 단풍나무, 무궁화가 있다. 에버랜드와 같은 밤 개장을 독립기념관이 못할 이유가 없다. 독립운동과 자연을 연결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민 절반이 종교를 믿는다. 독립운동과 기독교전, 독립운동과 불교전, 독립운동과 천주교전, 독립운동과 천도교전 등 독립운동과 종교를 연결해 국민이 찾는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했다. 관장 취임 후 이 약속을 지켜 나가는 중이다.”

-임기는 언제까지인가?

“2027년 8월 8일까지다. 2년 남았다.”

-힘들 텐데, 주변에서 그만두라는 얘기는 없나?

“저들이 어떻게 하든지 충실하게 업무를 하고 있다. 그게 공직의 도리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임기를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란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만둘 생각 없다.”

-꼭 하고 싶은 말은?

“나에 대한 감사원과 보훈부 감사가 진행 중이다. 오늘도 감사원에 답변서를 쓰고 있다. 당신이 관장 부임하기 이전 언제 어디에서 무슨 강연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우리가 꿈꾸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학창 시절에 겪었던 독재 시절보다 더한 나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독립기념관 바로 세우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9.08. suncho21@newsis.com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았다. 총신대 교수, 고신대 석좌교수,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 기독교 독립운동사가 전문 분야다. 저서는 ‘끝나야 할 역사 전쟁’ ‘남강 이승훈과 민족운동’ 등.

<김형석 관장 광복절 기념사>

(전략)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국민 통합’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에는 역사 문제가 한몫을 차지하고, ‘광복’에 관한 역사 인식의 다름이 자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이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는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은 “항일 독립 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 다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가 주목하는 3·1운동으로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고, 이를 계기로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독립을 위한 외교 활동과 일제에 맞선 무장 항쟁을 병행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켰습니다.

1932년 4월 29일 24살의 청년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가 의거 직전에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에디슨과 같은 발명가가 되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조국 독립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두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던 것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광복은 ‘과거의 종결’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책임’입니다. 우리는 오천 년의 역사를 공유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다름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역사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고, 진정한 광복의 완성인 통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광복 80년을 맞이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