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지 대통령실 1부속실장이 실세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센 줄은 몰랐다는 사람이 많았다. 국정감사 직전, 그를 총무 비서관에서 빼낸 인사는 김 실장의 위상을 다시 확인해 주었다. 대통령실은 “정상적 보직 이동”이라 했지만 국회 출석을 회피할 목적임은 누가 봐도 뻔했다. 이 정권은 왜 이토록 그를 감쌀까.
깊어 가는 ‘김현지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시중에 나도는 추측은 두 갈래다. 첫째, 김 실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이란 설이다. 정권의 은밀한 내막이 드러날까 봐 노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둘째, 김 실장이 성격적으로 밖에 드러나는 걸 극구 꺼린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그는 나이·고향·학력 같은 기본 정보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진상을 알 길은 없으나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적(私的) 목적 앞에 공적(公的) 시스템이 희생됐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개인사(事) 보안을 위해, 혹은 측근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국감이라는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 공(公)이 사(私)에 밀렸다.
공·사 역전은 국정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의 개인 변호인들이 대거 공직에 기용됐다. 대장동, 대북 송금, 위증 교사 사건 등에서 활동했던 변호사들이 행정부 핵심 요직과 국회에 줄줄이 입성했다. 그 숫자가 10명을 넘는다. 웬만한 변호인은 다 한 자리씩 꿰찬 셈이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공직 경력이 가져다줄 ‘몸값’ 인상 효과를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다. 수임료를 세금으로 지불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 7명도 고위직을 받았다. 법무장관·선관위원·국가교육위원장 같은 장·차관급 자리들이다. 금융 비전문가가 금감원장이 되고, 외교 문외한이 유엔 대사에 발탁됐다. 이들은 연수원 동기생 300여 명 중에서도 이 대통령과 노동법학회 등을 같이한 ‘절친’ 그룹이라고 한다. 직무 적합성보다 개인적 친밀도에 따라 자리를 나눠 줬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공직이 선물처럼 주어진다면 그것은 족벌주의(네포티즘)에 다름 아니다.
그중에서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대목들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검찰·법원 등 사법 기관을 관장하는 대통령실 민정·법무·공직기강 라인을 자기 사건의 핵심 변호인들로 채웠다. 중단된 재판이 재개될 것에 대비한 포석처럼 비쳤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엔 대북 송금 사건 변호인을 기용했다. 송금 당시의 국정원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자리에 재판 당사자를 갖다 박은 모양새였다. 법제처장에도 자신의 변호인 출신을 배치했다. 법령 해석의 편파성 시비를 부를 만했다.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 대응 차원의 인사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개인 문제에 공적 권력을 동원하는 이 대통령 스타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야당 대표 때도 거대 민주당을 전속 로펌처럼 부리며 국회를 방탄의 무대로 활용했다. 민주당은 대통령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줄줄이 탄핵 소추하고, ‘법관 선출제’ 등을 내세우며 재판부를 압박했다. 의회 제도를 개인 방탄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정권을 잡자 국가 근간인 법 제도까지 손대고 나섰다. 이 대통령이 세 사건에서 기소된 혐의인 형법상 배임죄를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 ‘보완’ 정도를 원했던 경제계 요구보다 몇 발짝 더 나아가 통 크게도 아예 없애겠다고 했다. 반기업으로 치닫던 정권으로선 의외였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상법상 배임죄는 놔두겠다고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 대통령은 줄줄이 ‘면소(免訴)’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5000억원 공공 손실을 초래한 혐의의 대장동·백현동 재판, 1억여 원 세금 유용 혐의의 법인카드 재판 등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법원 유죄가 확정된 선거법 사건은 이미 관련 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 대통령의 유죄 혐의였던 ‘허위사실 공표죄’의 요건을 완화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언제라도 본회의 처리가 가능한 상태로 대기 중이다. 성남FC 사건 혐의인 제3자 뇌물죄도 ‘공공 이익’이란 면책 조항을 추가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들 역시 이 대통령 혐의를 소멸시키는 효과가 있다.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하겠다며 검찰청 폐지법을 초고속 처리했다. 검찰이 해체되면 이 대통령 재판이 재개됐을 때 수사 검사들이 공소 유지를 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대법원 정원을 늘려 자기편 사람으로 채우겠다고도 한다.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일련의 법·제도 개편이 대통령의 형사 사건과 관련 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문다.
민주당이 박근혜·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 ‘권력 사유화’ 논리였다. 두 대통령이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밀어붙였다. 이재명 정권은 공적 권한은 물론, 국가 체제의 근간인 법률까지 사익(私益)에 맞춰 고치려 한다는 의혹을 받는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권력 사유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