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한국은 총기 소유가 불법이라 다행이다”라는 글이 종종 보인다. 젊은 층에서는 일종의 자조적 밈이다. 그만큼 사회적 분노가 많다는 뜻이겠다. 미국에서는 이런 말이 농담이 될 수 없다.
지난 9월 10일 미국 우익 단체 ‘터닝포인트 USA’ 공동 창립자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소셜미디어엔 상반된 반응이 올라왔다. 평소 정치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친구 맥스(가명)가 긴 추모 글을 올렸다. 커크는 청년 보수주의 운동의 선봉장이자, 평소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었다. 실제로 커크는 각 대학 캠퍼스를 돌며 즉석 ‘토론 배틀’을 벌이곤 했다. 드물지만 “당신과 의견은 다르지만 와 줘서 고맙다”로 마무리하는 훈훈한 장면도 있었다.
반면 ‘자업자득’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다른 친구 크리스틴(가명)은 살인 행위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추모할 마음도 없다고 한다. 커크는 총기 규제에 반대했고 “매년 발생하는 총기 폭력 사망은 수정 헌법 2조를 지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 왔다. 진보 진영에서는 그를 ‘파시스트’라고 비난한다.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을 뿐, 사실상 폭력을 선동했다는 거다.
맥스와 크리스틴 모두와 친한 잭(가명)은 중간에서 한 장면을 회상한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2015년 흑인 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의 장례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르며 추모하던 모습이다. 잭은 “오바마의 정책은 문제가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정한 리더십을 보였다”고 한탄한다. 동시에 “10년 전만 해도 분노가 지금보다는 약했던 시기였기에 그런 리더십이 통한 면도 있다”고 진단한다.
커크의 죽음을 ‘국가적 재앙’이라고 부른 맥스는 “우리 편이 상대방을 부수는 일이라면 정치인들도, 언론도, 지지자들도 한몫하고 싶어 한다”고 한숨을 쉰다. 보수 진영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자 우대 정책은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한의 연민과 공감 대신 조롱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맥스는 “커크의 아내는 추모식에서 ‘범인을 용서한다’고 했지만, 좌우 많은 사람은 상대방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죄’를 용서할 생각이 없어 보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남 얘기 같지 않다. 미국보다 수위는 낮지만, 우리 역시 여야 정치인이 선거 기간 중 ‘테러’에 준하는 폭력을 당한 게 불과 작년 일이다. 일상적 분열은 더 두드러진다. 상대방을 설득과 견제 대상이 아닌 숙청, 소멸 대상으로 몬다. 무책임한 선동 언어가 선풍적 인기를 끈다.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시켜도 ‘우리 편’의 행위라면 눈을 감는다. 민주 사회에서 의견 충돌은 당연하다. 점잖고 건설적인 토론만 기대하기도 어렵다. 감정이 상할 일도 빈번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아야 하고, 그 선을 넘는 이를 제지하는 것이 민주 시민의 역할이다. 그 선을 뭉개는 이들이 ‘내 편’이라고 여겼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보복은 보복을 낳는다. 커크의 사망 뒤 버지니아 주립대, 앨라배마 주립대 등 미국의 역사적 흑인 대학(HBCU)들이 테러 위협을 받아 캠퍼스를 봉쇄했다. 그곳 학생들은 무슨 죄인가. 한국은 총기 소유가 불법이라 더 안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총이 없어서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분노가 있어도 선을 지키는 사회, 그 선을 시민들이 서로 지켜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