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조희대 대법원장은 직(職)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내란특별재판부’ 등 민주당 추진 법안에 대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 지 3일 만에 비웃기라도 하듯 나온 반응이다.
독재 정권에서도 공개적으로 대법원장 사퇴를 압박한 일은 없었다. 과거 사법 파동 중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법원 내부에서 소장파 판사들이 개혁을 요구하며 한 것이다. 한때 민주당의 사퇴 요구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브리핑을 했다가 정정한 대통령실은 16일 “대법원장 거취를 논의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 등과 만나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처리를 논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압박했고, 조 대법원장이 17일 “누구와도 논의한 바 없고 만남을 가진 적도 없다”고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여당은 지난 5월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대선 개입이라며 대법원장 사퇴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판결 비판을 넘어 사법부를 겁박하는 행태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선출 권력이 최고 권력’ ‘사법부는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것’이란 논리를 확장하면 법원이 법에 따라 재판하는 것보다 광장에서 다수결로 시비를 가리는 게 더 낫다는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그 경과를 돌아보면 법원 스스로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6개월 내에 선고해야 하는 1심이 2년 2개월 걸렸다. 재판장은 증인 50명이 넘는 사건을 2주에 한 번씩 재판하다 사표를 냈고 중앙지법은 이런 재판 진행을 방치했다. 2심은 사진 확대가 조작이라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은 파기환송 직후 재판일을 지정하며 의욕을 보였다가 민주당의 거센 압박에 대선 이후로 재판을 미뤘고, 결국 이 대통령의 모든 재판은 중단됐다.
공직선거법만이 아니다. 대장동 사건 재판부는 야당 대표 시절 의사 일정을 이유로 갑작스러운 불출석을 반복한 이 대통령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장동 업자들의 재판에서도 핵심 증인이던 이 대통령이 다섯 차례 소환에 불응했지만, 구인장을 발부하지 않고 증인 소환을 포기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 일선 법원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법과 원칙대로 신속하게 재판하는 게 그동안 법원 힘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 당연한 원칙을 저버린 법원은 결국 선출 권력에 얕보였고, 힘의 논리가 통한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그리고 뒤늦게 이를 바로잡으려던 대법원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법원의 신속·공정한 재판 앞에선 선출 권력의 ‘갑질’은 통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삼권분립을 배우는 세상에 대법원장 사퇴 요구와 같은 무리한 압박은 후과를 낳을 것이다. 선출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