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은 윤석열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0.73%포인트 차이 박빙이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 측에선 “우리 요구대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면 이길 수 있었다”는 불만이 나왔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이 돈 풀기를 거부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거부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수행단에 이재명 경기지사를 배제한 것과 함께 친문(親文)들의 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의 대표적 근거로 거론된다. 2024년 총선 공천 때 친문 중심으로 ‘비명횡사’를 당한 것도 두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치권 정설이다.
이 대통령과 기재부의 충돌은 역사가 깊다. 2016년 성남시장 때 정부의 지방 재정 개혁안에 반대하며 단식을 했다. 2020년 재난지원금 지급 때는 경기지사로서 보편 지급을 주장했지만 홍남기 장관은 “책임 없는 발언”이라고 했다. 야당이 이 지사에게 “철이 없다”고 하자 홍 부총리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기재부가 2022년 지역 화폐 예산을 21조원에서 6조원으로 깎자 이 대통령은 “만행에 가까운 예산 편성”이라고 했다. 여당 대선 후보가 당 회의에서 20분 동안 “따뜻한 방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며 기재부를 비판했다. 대선 4개월 전이었다.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은 복수극 2부 정도 된다. 검찰이 왜 78년 만에 해체되는지는 모두 알고 있는 그대로다. 검찰이 쌓아온 업보에 이 대통령을 5가지 사안으로 재판에 넘긴 것이 가중 처벌됐다. 정권 재창출을 못 한다면 이 대통령은 퇴임 후 재판을 피할 도리가 없다. 기재부가 18년 만에 재경부와 예산처로 쪼개지는 것도 이 대통령이 요구했던 재난지원금 거부와 지역 화폐 예산 축소 외에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제 국가 재정은 엘리트 관료들의 책임감에서 5년 위임 권력의 표를 향한 탐욕으로 넘어가게 됐다. 검찰과 기재부의 해체는 엘리트 관료 체제의 붕괴를 뜻한다.
‘복수극 1부’는 특검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워낙 큰 사고를 쳤기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도 이런 사안은 수술처럼 신속하고 정밀하게 종양을 제거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집도의가 늘어나 여기저기 칼을 들이댄다. 복수극이 지루해질까 봐 구성을 다채롭게 했다. 전직 대통령의 팬티가 나왔고, 대통령 부인의 수천만원 목걸이와 금거북, 건진법사라는 무속인도 등장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내란 방조 혐의로 한덕수 전 총리가 등장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정복 인천시장까지 내란 가담 의혹이 있다며 무대에 세우려 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대표는 복수극 상연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야당과 합의했다가 너덜너덜해졌다.
복수는 아무리 명분이 있더라도 어감이 별로다. 그래서 과거 ‘적폐 청산’처럼 이번에는 ‘내란 극복’ 포장지를 씌웠다. 복수극 1부가 윤석열 부부를 겨냥한 특검, 2부가 검찰과 기재부를 겨냥한 정부 조직 개편이라면 3부는 사법부다. 법원이 복수극 3부의 대상이 된 것은 누구나 짐작하듯 선거법 유죄 취지 파기 환송과 윤석열 구속 취소, 한덕수 영장 기각 때문이다. 길게 보면 대통령 퇴임 이후의 재판 문제도 있다. 현재의 보수 우위 대법원으로는 불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해 대통령 재임 중 친민주당 성향 우위로 대법원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제 독재 권력도 못 했던 대법원장에 대한 공개적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대통령이 “뭐가 위헌이냐”고 한 이상 헌재도 ‘내란 특별재판부’에 제동을 걸지 못하게 됐다. 대통령과 입법 권력을 압도적으로 장악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그 현장을 목도하고 있다. 복수극 4부는 국민의힘과 서울시장을 포함한 지자체장으로 정해졌지만, 5부와 6부는 누굴 대상으로 언제쯤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복수 영화 ‘킬빌’은 뻔한데도 2시간이 질리지 않는다. 빌이라는 우두머리를 잡기 전 그의 부하들을 차례로 제거하는데 그 방식이 매번 다르고 배경도 달라진다. 대통령 팬티나 영부인 목걸이처럼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스크린에 피가 흥건하지만 영상과 음악은 아름답다. 영화 ‘킬빌’의 복수 목표는 제목처럼 빌이라는 악당인데, 이번 사상 최대 복수극은 윤석열 부부를 겨냥한 ‘킬윤’이 아닌 것 같다. 대한민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던 시스템을 겨냥한 ‘킬대한민국’으로 변질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이게 본질이었는지 진실이 곧 드러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