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권 100일은 ‘긴가민가했더니 역시나’였다. 3년 전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인사 발표가 날 때마다 ‘또 검사야…’라는 말이 따랐다. 무슨 수사를 많이 해봐 그 분야에 환하다며 꺾꽂이하듯 여기저기에 검사를 꽂았다. 당시 아첨배들은 ‘대통령이 입시 비리 수사를 많이 해서 교육 문제에 교육부 장관보다 밝다’고 추켜세웠다. 검사 눈엔 검사만 보였는지 아무 데나 ‘카르텔’ 잣대를 들이대는 검사 출신이 넘쳐 났다.
이재명 민주당은 그때마다 정권의 ‘검사 중독(中毒) 인사’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게 바로 엊그제 같은 일이라 이것만은 달라지려나 했더니 아니었다. ‘검사 떼’가 밀려나자 ‘변호사 떼’가 달겨들었다. 대북 불법 송금 사건 변호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 위증 교사 사건 변호사 등 대통령 관련 사건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들에게 대통령실과 정부 요처의 살점이 좀 붙어있을 만한 뼈다귀를 제공했다. 변호사 비용을 관직(官職)으로 후불(後拂)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살 만한 대목이다.
곧이어 두 번째 파도가 밀려들었다. 이번에는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생(同期生) 그룹이다. 그들은 중장기 교육 정책의 뼈대를 잡는 국가교육위원장과 UN 대사 자리까지 차지했다. 신임 국가교육위원장은 조국 조국혁신당 위원장 자녀의 입시 특혜가 논란을 빚던 시기 부산대 총장이었다. 지난 20년 가까이 교육 개혁은 기술 혁명 시대에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과제라고 해왔다. 교육부 장관은 전교조 부위원장 출신, 국가교육위원장은 검사를 지낸 변호사다. 교육 개혁은 이미 작파(作破)한 모양이다.
‘변호사 국가’가 있고 ‘엔지니어 국가’가 있다. 각기 장단점(長短點)이 있으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엔지니어는 많을수록 좋지만 변호사는 그 숫자가 선을 넘으면 해악(害惡)이 된다는 것이다. 2024년 미국 변호사 숫자는 자그마치 132만2700명이다. 뉴욕에 18만7000명, 캘리포니아에 17만6000명이다. 이들은 소송(訴訟)으로 먹고산다. 일거리가 부족하니 위법(違法)과 탈법(脫法)을 넘나들며 형무소 담장 위를 걷는다.
하버드 법학 대학원에 앨런 더쇼비츠라는 유명한 형사법 교수가 있었다. 수강(受講) 신청은 접수 10분 안에 마감됐다. 그는 인기 이유를 이렇게 댔다. “미국 변호사 상당수는 변호사가 아니라 범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럴 경우 내 강의를 들었던 변호사의 변호는 맡아주겠다고 약속했고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왔다.”
2001년은 중국 국력(國力)이 벌떡 일어선 굴기(崛起)의 해다. 그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 경제에 합류(合流)했고 세계의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그 배경에는 클린턴 정부의 역사적 전략 착오가 있었다. 중국이 세계 시장에 접촉해 경제가 발전할수록 국내 정치가 민주화되고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어갈 책임 있는 동반자가 되리라고 오판(誤判)한 것이다.
WTO 가입 한 해 뒤 2002년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가 매일 1억5000만달러, 외화 보유고는 1억8000만달러씩 늘어나고 쌓여갔다. 애플을 비롯한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미국 내 공장 문을 닫고 중국에 새 공장을 차렸다. 25년 지난 지금 미국은 세계 패권을 두고 공룡(恐龍) 중국과 벼랑 끝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중국의 최고 의사 결정과 집행 기관이다. 2002년 당시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 외 8명 위원으로 구성됐다. 전원이 엔지니어 출신이다. 전공도 총서기는 수리공학, 나머지는 무선 트랜지스터·구조지질학·자동제어(制御)·전기공학·압력가공학·전자공학 등으로 다양했다. 엔지니어를 당 간부로 뽑고 키운 것은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변호사 국가’와 ‘엔지니어 국가’ 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에서 안면(顔面) 인식 기술을 이용해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공포 국가를 만든 것도 엔지니어다. 기술만 믿고 세계의 대국(大局)과 요처(要處)를 보지 못할 위험도 있다.
한국은 ‘변호사 국가’로 가는가 아니면 ‘엔지니어 국가’로 가는가. 노무현·문재인·윤석열·이재명 모두 변호사다. 그때마다 소란스러웠고 지금도 소란스럽다. 22대 국회의원 가운데 20%인 61명이 변호사 출신이다. 여의도에서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고 궤변을 늘어놓고 소란을 피우는 의원들도 대부분 변호사 출신이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문 직종 가운데 변호사 평균 수입은 20번째 정도다. 그러니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따라 뛰듯 너나없이 여의도 금배지를 줍겠다고 나선다. 망둥이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