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고궁박물관은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조선 후기 ‘백동자도(百童子圖)’ 병풍과 ‘구운몽도’ 병풍을 소개하는 ‘다시 살려낸 그림 속 희망’전을 열었다. 앞서 리움미술관도 지난 3월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 특별전을 열었다. 두 전시에 나온 유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반도 밖으로 나가 외국 박물관에 소장된 국외 소재 문화유산이란 점이다. ‘백동자도’ 병풍은 미국 콜로라도주(州) 덴버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백동자도’란 많은 아이가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서포 김만중의 소설을 바탕으로 그린 ‘구운몽도’ 병풍은 오리건주 포틀랜드 미술관에, 과거 급제자 환영 행사 장면을 그린 ‘평안감사~’는 보스턴 인근 피보디에식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작품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모두 조선 후기 우리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들이지만 훼손이 심해 제대로 전시되지 못했다. 만리타국 수장고에 방치돼 있던 병풍들이 2023년 고국으로 돌아와 1~2년 복원과 보존 처리 과정을 끝내고 올해 새 생명을 얻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외국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을 복원·보존 처리해 주는 이유는 우리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세계에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외국 박물관에 가 보면 중국실과 일본실은 규모가 큰 반면, 한국실은 초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실과 일본실에서 더부살이하는 경우도 있다. 덴버 미술관만 해도 소장품 7만여 점 중 7000여 점이 아시아 컬렉션일 만큼 아시아 유물 비율이 높지만, 그중 5000점이 중국과 일본 유물이고 한국 유물은 380여 점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덴버 미술관은 새 생명을 얻은 ‘백동자도’ 병풍 전시회를 여는 등 한국 주제 전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미술관 내 한국실도 기존 공간보다 두 배 넓은 205㎡로 확장해 재개관했다.
한국은 식민 지배를 겪으며 문화재 약탈 피해를 겪었기 때문에 국외 문화재를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우리 정부 원칙도 약탈당한 문화재는 환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약 1만2600점이 기증이나 매입을 통해 국내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상적인 매매나 선물 등으로 나갔거나 반출 경위가 불분명한 유물은 환수가 어렵다. ‘백동자도’ 병풍처럼 국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는 올해 초 기준 24만7718점에 이른다. 일본이 10만8000여 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 6만5000여 점, 독일 1만5000여 점, 중국 1만4000여 점, 영국 1만2000여 점 순이다. 29국의 박물관·미술관 801곳에 우리 문화재가 소장돼 있다. 해마다 국외 소재 문화유산을 찾아내는 조사가 이뤄지고 있어 연간 약 1만점이 새로 발견된다. 이들을 현지 한국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적 가치가 높은데도 훼손이 심해 전시되지 못하고 수장고에 방치된 유물도 많다. 이 유물들을 우리 복원 기술로 살려내고 현지 전시까지 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국외 문화유산 활용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은 ‘나라 밖 문화재를 말하다’란 글에서 “초라한 (외국 박물관) 한국실을 해결하는 가장 명쾌한 해답은 현지의 유물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 박물관이 소장한 우리 유물의 보존·복원과 활용 지원을 담당하는 곳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다. 2014년 첫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국외 미술관·박물관 26곳에 소장된 우리 유물 122점을 되살렸다. 귀퉁이에 금이 간 것을 본드로 대충 붙여 놓은 청자, 일본 유물로 오해해 일본풍으로 잘못 수리한 그림 등을 찾아내 우리 전통 재료와 기법으로 원래 모습을 되찾아 보존 처리한다. 이를 통해 현지 박물관의 얼굴로 위상이 격상되기도 한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미술관이 소장한 ‘해학반도도’ 병풍은 복원 이후 이 미술관이 자체 선정한 ‘10대 소장품’에 포함됐다. 조사 과정에서 그때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작품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와이 호놀룰루 미술관이 소장한 1586년 작 회화 ‘계회도’는 우리 전문가가 수장고에서 발견했을 때 미술관 소장품임을 뜻하는 등재번호조차 없었다. 조선 전기 그림 다수가 임진왜란 때 소실돼 현전하는 수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발견 자체가 문화적으로 큰 사건이다. 기록에는 남아 있는데 종적을 알 수 없던 작품이 드러나기도 한다. 조선 고종이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때 나전농과 오원 장승업의 그림 넉 점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림들은 보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실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고종이 보낸 흑칠나전이층농의 훼손이 심하다”는 모스크바 크렘린 박물관의 도움 요청을 받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그림들을 찾아냈다. 크렘린 박물관은 이 발견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2023년 열어 가구와 그림을 함께 공개했다.
한국에서 보존 처리를 마친 유물은 돌아가기 전 고국의 국민과도 만나고 돌아간 뒤엔 현지인들과도 만난다. ‘평안감사~’ 병풍은 지난 5월 미국으로 돌아가 피보디에식스 박물관 한국실인 유길준갤러리의 대표 유물로 전시되고 있다. 훼손된 유물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스토리가 더해져서인지 전시 반응도 뜨겁다. 2022년 들여와 보존 처리한 미국 LA카운티 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활옷의 국내 전시엔 30만명이 다녀갔다. 외국인 관람 비율도 높다. ‘다시 살려낸~’ 전은 5만여 명 관람객 중 40% 넘는 2만1600여 명이 외국인이었다. 한국에 관광 왔다가 이 전시를 관람한 튀르키예 여성 에다씨는 “K팝과 한류 드라마를 좋아해서 왔는데 한국의 전통문화도 아주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튀르키예에 돌아가서도 한국 유물을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보겠다”고 말했다.
直指와 몽유도원도 국내서도 감상? 소장국들과 신뢰 쌓아야 가능
국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와 감상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국내 전시는 대여 형식으로 추진되는데 우리 문화재를 소장한 나라들이 한국에서 유래한 문화재를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일본 덴리대(天理大)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이 그런 경우다. ‘몽유도원도’는 2009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온 것이 마지막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덴리대로부터 ‘몽유도원도’를 빌려와 전시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일본 측이 한국의 반환 요구 여론을 우려해 공개를 꺼리는 데다 2012년 국내 절도단이 일본 쓰시마섬의 사찰 간논지(觀音寺)에서 고려시대 철불을 훔쳐 왔다가 법정 다툼 끝에 13년 만에 돌려준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직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국내 전시가 이뤄진 적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여러 차례 국내 전시를 추진했지만 프랑스 측이 ‘직지’를 한국에 보냈다가 압류당해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 무산됐다.
이 때문에 외국에 나간 우리 문화재를 국내에서도 감상하려면 현재 소장국들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1973년 전시 이후 무려 50년 만인 2023년 파리에서 ‘직지’ 전시회를 열었을 때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전시를 지원하고 학술 조사와 연구 협력을 약속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김정희 이사장은 “전시를 계기로 협업하고 좋은 신뢰 관계를 쌓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직접 직지를 볼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국외 유물의 보존·복원 지원도 문화유산 교류를 위한 국가 간 신뢰 쌓기의 모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