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취임 사흘째 이뤄진 첫 통화 자체가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늦은데다, 이후에도 한미 정상간 채널은 두달 이상 닫혀 있었다./뉴스1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선방했다는 정부의 자화자찬도 우습지만, 무용담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공개된 어떤 장면은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광우병 괴담’ 카드로 소고기 개방을 막았다고 내세운 대목이 그랬다. 30개월 이상 수입을 풀라는 미측 압박에 협상단은 2008년 광우병 시위 사진을 꺼내 보였다고 했다. “100만명이 모였다”며 민감성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입을 막아 뭐가 이익이 됐는지도 의문이지만, 비이성적 선동에 휩쓸렸던 우리 수준을 실토한 꼴이어서 낯이 뜨거웠다. 전 세계가 다 30개월 제한을 풀었는데 우리만 비과학의 도그마에 갇혀 있는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떠드나.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은 베트남 파병에 대한 충격적 인식의 단면을 드러냈다. 그는 베트남 서기장과 회담에서 베트남이 “외국 군대와 싸워 이긴 저력 있는 국가”라고 했다. 공산주의 북베트남이 미국 등과 맞선 통일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상찬(賞讚)한 덕담이겠지만, 전쟁의 한 당사자였던 우리로선 듣기 거북한 소리였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피를 흘린 맹호·청룡·백마부대가 외국 군대란 말인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우리 군인들에게 ‘침략자’ 프레임을 씌워도 되는 건가.

베트남전을 미 제국주의 침탈 전쟁으로 규정하는 것이 좌파의 전형적 역사관이다. 한국군은 미국의 용병(傭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5000여 명을 희생시키며 싸웠던 것은 결코 돈 때문이 아니었다. 6·25의 상흔이 남아있던 1960년대 중반, 한국 사회는 베트남 전선을 공산주의에 맞선 ‘제2의 6·25’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치의 전쟁이자, 이념의 싸움이었다. 22국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켰던 우리가 국제사회에 되갚을 때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베트남 파병은 역사 발전을 주도하는 편에 선 국가 의지의 발현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주류적 가치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국제 질서의 지분을 확보하고 번영의 열매를 배당받을 수 있었다. 한미 동맹을 격상시키고 달러 송금을 종잣돈 삼아 경제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베트남 파병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외국 군대’라며 남 얘기하듯 객관화하는 것은, 적어도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좋든 싫든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이다. 이 대통령은 이 흐름에 거스르는 ‘비주류 세계관’으로 종종 논란을 빚었다. “미군은 점령군”이라거나 일본을 “군사적 적성(敵性) 국가”라 했고, 한미일 훈련에 “더러운 자위대 군홧발”이라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중국에는 “두 손 모아 셰셰”를, 북한엔 “더러워도 평화”를 주장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들 “무슨 상관이냐” 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초보 정치인 젤렌스키” 탓으로 돌렸다.

대통령이 된 이후 자제하는 듯했지만 잠재된 인식을 다 숨기진 못했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그는 반중(反中) 시위가 “욕설·폭력이 난무하는 혐오” 양상을 보인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중국 측 항의에 대한 응답인 듯 보였으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혐오 시위엔 침묵했다. 민노총·대진연 등이 성조기를 찢고 트럼프 가면을 모욕하고, 평택·군산·성주·부산의 미군 기지, 심지어 뉴욕까지 원정 가서 반미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해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를 향한 워싱턴의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징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관세 협상에서 두 나라 정상 간 채널은 완전 먹통이었다. 일본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와 6차례의 대면·전화 회담으로 소통한 반면, 이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 20분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미측은 한국 협상팀을 제대로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미 상무장관 동선을 따라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스코틀랜드로 쫓아다니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시한에 쫓긴 한국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한 선물 보따리를 제공하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의 기득권까지 전면 포기해야 했다. 대폭 양보 끝에 협상이 타결되자, 채널을 닫아 걸었던 트럼프는 그제서야 “2주 내 정상회담”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전문가 빅터 차는 “관세 합의의 보상”이라고 했다. 한국이 이 대통령의 ‘백악관 티켓값’을 치렀다는 뜻이었다.

재임 중 ‘글로벌 왕따’ 논란에 휩싸였던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국제 행사에 나가서도 따로 겉도는 모습을 노출시켜 구설수를 불렀다. 문 대통령의 개인 성품 탓도 있겠지만, 중국·북한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 우호적인 성향이 서방 정상들 사이에 비호감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무성했다.

이 대통령 역시 친중·친북·반미 이미지로 국제사회에 각인돼 있다. 비주류 세계관이 초래한 비주류 이미지는 이번 주 워싱턴·도쿄에서 글로벌 주류 진영과 대면하는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권 핵심에 ‘미 문화원 점거’ 전과의 국무총리, ‘미 대사관저 방화’ 전과의 여당 대표가 포진한 것은 설상가상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