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에는 조짐이 있다. 조짐이란 어떤 일이 실제 발생하기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미리 예고(豫告)해 주는 신호다. 징조 또는 전조(前兆)라고도 한다. 이런 단어가 들어가는 표현의 특색은 그것이 대부분 과거형(過去形)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그게 남침(南侵)의 확실한 징조였다’는 식(式)이다. 왜 당시에는 그걸 알아보지 못했는지 후회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징조를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평소 그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질은 온갖 흐름 속에서 다가오는 시대의 조짐을 뽑아내 읽는 능력이다. 1851년 제1회 만국박람회가 런던 근교에서 열렸다. 영국은 물론 유럽 전체에서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다들 영국 산업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고 찬탄의 말을 쏟아냈다. 수백 개 산업 분야에서 영국 기업들이 1등 상을 싹쓸이하듯 쓸어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프린스 앨버트(Prince Albert)는 생각이 달랐다. 앨버트는 당시 여러 소국(小國)으로 갈라진 독일 출신이었다. 그는 철강 분야 1등 상이 독일에 돌아간 걸 보고 이상(異狀) 징조를 읽었다. 당시 세계 산업 흐름은 철강의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이었다. 그는 영국 과학교육협의회에서 독일을 주목하라면서 영국 교육의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시대의 전조를 무시한 대가는 가혹하게 돌아왔다. 1889년 만국박람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에펠탑도 이때 세워졌다. 유럽 전체가 박람회장에서 세계 산업의 주도권이 영국을 떠나 독일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독일은 철강 산업 분야는 물론이고 기계·화학·광학(光學) 분야 1등 상을 휩쓸었다. 산업 패권(覇權) 교체는 세계 정치 패권 교체에 대한 예고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영국은 38년 전 프린스 앨버트의 경고를 떠올렸다.
1851년과 1889년 사이 독일에선 아헨공대(工大)를 비롯한 무수한 공과대학과 공학전문학교가 세워졌다. 당시 영국을 주도했던 산업계 주류(主流)는 숙련된 기술 장인(匠人)들이 공장 현장에서 효율을 높이는 혁신이었다. 증기기관과 직물 기계 등이 바로 그런 현장 혁신의 산물이었다. 독일의 공학 교육은 달랐다. ‘발명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제야 영국 산업계와 교육계 리더들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 숫자가 독일의 공과대학 숫자보다 적다’고 한탄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몇 되지 않는 자연과학과 공학 전공 학생들은 칙칙한 공장을 외면하고 금융계·증권계·동인도회사 등 공장보다 보수는 많고 업무 환경이 쾌적한 분야로 몰려갔다.
징조와 조짐과 전조를 무시했던 영국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세계 산업계의 패권을 되찾지 못했다. 한때 독일의 것이 될 뻔한 세계 산업 패권은 독일 정치인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자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다.
중국 대학에선 매년 1200만명의 졸업생이 나온다. 그중 470만명이 자연과학·공학(工學) 전공 졸업생이다. 미국의 4배다. 중국 기업과 연구소 소속 엔지니어는 미국의 7배다. 한국 대학의 이공계 졸업자는 22만명이다. 어느 조사엔 이공계 대학 세계 서열 10위 안에 중국 대학이 8개다. 이런 징조를 놓치면 올라갈 사다리도 없는 ‘AI 세계 3대 강국’이란 풍선을 하늘에 띄우고도 이상한 줄 모른다. 그러니까 전교조 출신 국어 교사를 교육부 장관에 임명한다.
중국에는 첨단 산업 분야 대학과 연구소 불은 밤새 켜 있고 공장은 캄캄하다고 한다. 연구·개발에는 노동시간 제한이 없고 공장에선 노동자 대신 로봇이 조립 라인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집약 산업’이란 말이 점차 사라지고 ‘로봇 집약 산업’이란 말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시작했다. 밤새 불 켜진 연구소는 첨단산업을 일으켜 세우고 로봇이 노동자를 대신하는 공장이 재래식 산업을 받쳐준다.
연구·개발 투자를 많이 하는 세계 2500개 기업 명단에 중국 기업이 압도적이다.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의 비율은 현재의 30%에서 10년 뒤엔 40%로 올라간다고 예측한다. 이게 무슨 조짐일까. 한국 기업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시장을 선도(先導)하던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밀려난다는 것이다. 새로 임명된 민노총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 징조를 읽기 힘들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다. 우리가 징조와 조짐과 전조를 그냥 흘려보낸 패자(敗者)의 상투어 ‘올 것이 왔다’는 말을 되뇌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