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다시(again)’를 정치 간판으로 내세운 정치인 가운데 진짜 지도자는 드물다. 대개가 짝퉁이다. 그 대표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다. 진짜 나폴레옹의 조카인 그는 큰아버지가 몰락한 이후 정치 건달로 지내다가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영광’이란 구호로 대통령에 당선돼 의회를 해산하고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 그다음은 내리막이었다. 프로이센과 전쟁을 일으켰다 프로이센군 포로가 되는 망신을 겪고 쫓겨났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말은 나폴레옹 3세를 두고 한 말이다.

지금 ‘다시’라는 깃발을 든 세 나라 세 지도자가 세계 정치 중심 무대에 서 있다. 단연 으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 옆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復興)’을 내세운 시진핑 주석이고, 그보다 작은 조연급(助演級) 주연이 ‘위대한 러시아 부활’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이다. 특이한 점은 ‘세계 패권’ 혹은 ‘지역 패권’을 놓고 다투는 세 지도자 사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악역(惡役)을 도맡다시피 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트럼프·푸틴과 각별한 관계다.

대중이 현실이나 국가 위상(位相)에 불만을 품을 때 ‘다시(again)’ ‘부활’ ‘중흥(中興)’이란 단어가 대중 가슴을 파고든다. 최근 일본 총선에선 ‘재팬 퍼스트(Japan First)’를 내건 신생(新生) 정당이 돌풍을 일으켰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일본판이다. 독일·프랑스에서 기성 정당들을 위협하고 있는 정당들도 ‘프랑스 퍼스트’ ‘저먼 퍼스트’로 대중에게 다가선다.

국가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정치 구호는 민족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그 힘이 모이면 국제 질서 변경을 추구하는 쪽으로 몰아간다. 물론 그들은 ‘현상 변경’이 아니라 ‘현상 유지’라고 우긴다. 러시아 국민 다수(多數)는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데려와 러시아 군인 대신 죽게 만드는 푸틴 정책을 지지한다. 중국 대중들도 남지나해(海)에 돌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어 자국 영해(領海)라고 주장하는 정부 정책에 자부심을 느낀다. 최근 뉴욕타임스지(紙)는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의 거친 언행에는 민망해하지만 관세 부과 공세, 불법 이민 추방, 엘리트 세습 마당인 명문(名門) 대학 무릎 꿇리기 등 정책 목표엔 공감하기 때문에 트럼프 지지가 보기보다 견고하다고 평가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한 고비를 넘긴 후 이재명 대통령은 ‘국력(國力)을 키워야겠다는 걸 느꼈다’ 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정책과 민주당 행동이 그런 방향인가도 돌아봐야 한다. 관세 다음엔 주한 미군 감축과 중국 견제로 역할 변경,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재해석 등등의 난제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죽고사는 문제’로 넘어간다. 절벽에 난 길은 비켜 갈 수도 둘이 갈 수도 없다. 대통령 혼자 가야 한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장 걱정하는 국민은 일본 국민이다. 미국 국민은 아직 절박감을 느끼지 못하고 대만 국민은 몇 년 전 여론조사에서 ‘결사 항쟁(決死抗爭)’보다 ‘항복’ 쪽이었다. 대만해협에서 중국군을 격퇴하는 것은 미군과 일본 자위대 몫이다. 2차 대전 때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미군의 도쿄 대공습으로 하룻밤에 10만여 명이 불타 죽은 일본 국민의 전쟁 거부감은 완강하다. 그런데도 일본 지도자들이 미군과 공동 보조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러지 않으면 미국도 일본 방위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앞으로 북한군·중공군과 싸우고 뒤로는 미국의 압력에 맞서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7월 5일 미국에게서 미군 7사단을 철수하고, 2사단은 후방으로 돌려 휴전선은 한국군이 전담하라는 통고를 받았다. 그때 우리 국민 소득이 250달러, 수출액이 10억달러도 되지 않았다. 그 낭떠러지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혈로(血路)를 뚫었다. 국민도 그 사실을 몰랐다. ‘절대 고독(絶對孤獨)’이란 말이 아니고는 그들 심경(心境)을 담을 마땅한 표현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보름 후면 두 선배 대통령이 섰던 자리와 비슷한 자리에 서게 된다. 물론 그때처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후진국 대통령이란 누추한 차림이 아니라 세계 수출 6위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이다. 전력(全力)과 정성을 다하면 국가 지도자로서 인격적 성숙과 함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