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대선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유세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중국에 셰셰(謝謝) 하면 된다고 말한 것은 맞다. 중국에도 셰셰 하고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 중국하고 대만하고 싸우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두 달 만에 미국은 한국의 새 정부에 간접 화법으로 이런 통첩 같은 질문을 던졌다. 즉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거나 하면 미국은 주한 미군을 빼갈 수밖에 없고 한·미 방위조약에 따라 한국도 ‘역할’이 불가피함을 지적한 것이다. 표현의 형식은 ‘주한 미군의 역할 재조정’이라고 했지만 중국이 대만 침공으로 아시아의 판도를 재조정하려 한다면 한국도 동맹의 의무에 따라 대(對)중국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이 싸우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이 대통령에게 ‘그렇다면 미국도 주한 미군을 재조정하겠다’며 철수(撤收)성 응수를 한 셈이다. 미국은 원래 인도·일본·필리핀·호주 등을 아우르는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면서도 한국은 특수 사정을 고려해 거기에 포함시키지 않는 배려(?)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미국이 이 정부가 들어서자 ‘당신들이 중국·대만 문제는 우리 알 바 아니라는 식이면 우리도 주한 미군의 장래에 대해 알 바 아닐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이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하원 외교위원장 브라이언 매스트는 “한국(이재명 정부)은 미국과 중국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려 하지만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한국의 양다리 전략은 미국에는 ‘모욕’이며 동맹 전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도직입으로 나왔다.

트럼프 정부가 모든 교역 당사국과 만나 관세 문제 등을 협의하고 조정하면서 유독 미국의 7대 교역국인 한국과는 신임 대통령을 만나주지 않으면서 협상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좌파 정부가 안보·경제·국제질서에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나올지를 다각도로 체크하고 견제하는 과정인 것으로 나는 본다. ‘주한 미군 역할 재조정’도 어쩌면 이재명 정부의 의중을 떠보는 수 쓰기의 일환인 것이다. 시중에는 근거 없는 소문도 나돌았다. 즉 이 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를 먼저 만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중국의 시진핑부터 만나려 할 것인가를 점치는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이 던진 이런 힐난에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나라를 살리고 이끌고 간다는 것은 여기저기 기회주의적으로 셰셰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가랑이 밑을 기어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큰소리친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세계의 상대는 우리가 잘한다고 쉽게 끌려오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그 나라의 이재명’ 같은 사람이 수없이 늘어서서 그들 역시 연신 겉으로는 셰셰 하며 속으로는 이를 악무는 ‘소영웅’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세계에서 유독 우리의 기회주의만 소생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이 정부의 앞에는 주한 미군 역할 재조정과 대만 유사시 한국의 역할 문제 말고도 많은 안보적 난제가 놓여 있다. 전시작전권 문제, 주한 미군 주둔비 문제, 군복무 기간과 관련된 한국 군사력 유지의 적정선 문제도 심각한 사안이다. 통일부 명칭 문제, 대북 전단 금지 문제, 9·19 군사 협상의 문제, 북한 주적(主敵)의 문제 등 대북 관계도 이 정부의 이른바 ‘대북 긴장 완화’ 프로그램에 올라 있다. 신정부에 큰 목소리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북 평화론자들의 대북 유화론, 평화 공존론 등은 많은 보수 우파 사람들의 깊은 우려와 한숨 거리가 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삶의 터전과 울타리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보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구성원(국민)이 되도록 잘 먹고 잘살도록 조달하는 일이다. 경제 문제는 정치 집단의 교체에 따라 수정이나 교정이 가능하지만 안보는 한번 한쪽 길로 가면 수정이 불가능하고 되돌리기는 더욱 어렵다. 그것은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안보가 망가지면 경제도 망가지게 돼 있다.

한국의 이재명 좌파 정부는 지금 미국 극보수 트럼프의 매가(MAGA) 독트린에 저울질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좌파의 극단적 구호처럼 미 제국주의와의 단절로 갈 것인지 이 대통령의 처세술처럼 ‘여기저기 셰셰’ 하며 갈 것인지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