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이 2024년 12월 4일 새벽 국회 본관 정문 앞에서 국회 사무처 직원, 보좌진 등과 대치하고 있다. 계엄군은 정문이 막히자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진입했지만, 의원들이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위해 모인 본회의장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이날 국회에 투입된 병력은 약 280명으로 추정된다. 김지호기자

지금도 계엄 그날 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런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날은 선명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흘러도 또렷이 남을 기억이다.

기자의 그날도 그랬다. 저녁을 마치고 집에서 계엄 소식을 들었다. 우선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를 해야 한다는 사설을 송고했다. 직후 ‘모든 언론은 계엄사 통제를 받으며 포고령을 위반하면 계엄법으로 처단한다’는 포고문을 접했다. 서둘러 회사로 가야 했다. 당분간 집에 못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속옷과 양말도 챙겨 신문사로 향했다. 계엄 시 기자들의 행동 매뉴얼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편집국에 집결한 기자들은 모의 연습이라도 했던 것처럼 신문을 만들고 인터넷 뉴스를 송고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보고 사설을 한번 더 고친 뒤에야 새벽에 귀가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일들이 유독 흐릿하게 지워진 집단이 있다. 왜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했는가. 국민의힘에서 지금 이 질문은 금기다. 서로 물어서도 안 되고 답하지도 않는다. 어물쩍 넘기고 싶은 ‘불참의 기억’이다. 국힘에선 108명 중 18명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다. 한동훈과 가까운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당시 국힘 단톡방을 보면 집결지가 당사(黨舍)냐 국회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신성범이 “이럴 때 의원이 위치할 장소는 국회”라고 하자, 일부는 “국회가 봉쇄돼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잘도 넘어가는 국회 담장을 국힘 사람들만 못 넘을 이유는 없다. 박정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회의장으로 오라”고 했고, 한지아·우재준도 “담을 넘어서라도 와 달라”고 했다. 이런 혼란 속에 60명 이상이 국회 본회의장이 아닌 당사나 국회 다른 곳에 머물며 투표를 하지 않았다. 김민석 총리 주장처럼 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을 잤거나 다양한 불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날 밤 표결에 불참한 사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다.

불참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무지성파’다. 계엄이 무슨 의미인지, 의원들이 뭘 해야 하는지 그냥 몰랐던 사람들이다. 헌법 77조 5항은 ‘국회가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안다면 여의도 당사나 국회 다른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둘째는 ‘무소신파’ ‘눈치파’다. 국힘 관계자는 “당사에 왔던 의원 다수는 중진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시를 기다렸다는 말인데 사실대로 말하면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다. 그러나 당 서열 1위였던 한동훈 대표는 분명히 국회 본회의장 집결을 반복적으로 지시했다. 이들은 공식 지휘 체계가 아닌 실제 국힘을 움직이는 실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치 활동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에 잔뜩 겁먹은 채.

셋째는 자기 판단에 따라 투표에 불참한 ‘확신파’다. 이들 중 일부는 대통령과 모의해 투표를 방해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조직적 투표 방해가 아닌 이상, 계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표결에 불참한 것까지 특검이 처벌할 수는 없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면 된다.

국힘은 대통령 탄핵을 두고 찬탄·반탄 갈려 싸웠지만, 계엄 해제 표결 문제는 어물쩍 넘어갔다. 그러나 이 문제는 탄핵보다 훨씬 중요하다. ‘무지성파’ ‘무소신파’ ‘확신파’ 중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 자신이 묻고 답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기본이 안 된 ‘무지성파’, 권력만 좇아다니는 ‘눈치파’들은 정계 은퇴를 고려해봐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공직을 출세 수단으로 보는 의원들이 재생산되는 한 국힘의 미래는 없다. ‘확신파’들은 왜 자신이 계엄을 지지했는지 이유를 밝히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인적 쇄신은 국힘 혁신위가 할 일이지 특검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계엄 해제 불참 의원들이 지우려 해도 자신의 기억만은 지울 수 없다. 민주당은 보수 정당을 향해 40년 넘게 “전두환의 후예”라며 비난해 왔다. 국힘이 이 문제를 어물쩍 넘기려 해도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계엄 때 뭐 했느냐” 공세를 할 게 분명하다. 이 말이 질문이 아니라 듣는 것 자체가 괴로운 고문(拷問)으로 들린다면 이젠 정치 무대에서 내려오길 바란다. 국가라는 거창한 명분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