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에서 역사적 기로에 서게 된 기관 중 하나는 사법부다. 대선 다음 날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이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고 사상 유례없이 대법원장과 대법원 재판을 대상으로 한 특검법도 법사위에 올라와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과거 법원이 겪었던 외부 압력이 회자되고 있다. ‘위기 극복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의 압박은 판사 뒷조사, 인사 보복 등으로 노골적이었다.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법 독립을 지켜내야 한다”고 당부한 이용우 전 대법관도 그런 일을 당했다. 그는 대구지법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1982년 간첩 사건으로 기소된 포항제철 노동자에게 무죄 선고를 했다. 재일교포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이 고문과 불법 구금 끝에 ‘공작금’으로 둔갑한 사건이었다. 그러자 사건을 수사한 안기부가 대법원에 강하게 항의했고 대법원은 즉시 대구지법에 사건 기록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고향의 아버지 집에 정보과 형사들이 수시로 다녀갔고, 지방 근무 기간이 지났는데도 서울 복귀 발령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대쪽 판사’로 통했던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나서야 해소됐다.
이 전 대법관은 “이제는 그런 노골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했다. 대신 ‘우리 편’을 대법관 등 주요 보직에 보내는 방안이 유력하게 꼽힌다. ‘대법관 30명 증원’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특검법, 법관 탄핵, 고소·고발을 통한 수사, 대선 공약인 ‘법관평가위원회’를 통한 압박도 가능하다. 불법적인 뒷조사와는 달리 외형상 헌법·법률의 범위에 있다.
과거 법원이 외부 압박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보호막’이 됐던 선배 법관 , 끝까지 소신을 지킨 법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 촉발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동료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를 결의했던 이 사태로 판사들은 대거 법원을 떠났다. 내부 게시판에 쏟아진 맹비난과 동료들의 ‘투명 인간’ 취급을 버텼던 한 판사는 “외부 압력은 막아낼 수 있어도 내부가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특정 사건의 이례적 절차 진행’을 문제 삼을 듯했던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대선 직전 아무 의결도 하지 못한 것은 그때와 다른 양상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으면서 몇몇 판사가 여론 몰이를 하기 어려워졌다. 독립적인 MZ판사들도 늘어났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도 앞으로의 ‘사법 독립 지수’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될 것이다. 그가 2027년 6월 임기까지 꿋꿋이 버티며 외풍을 막아 내는 것과, 특검법의 칼날에 꺾이는 것은 국격을 바꿀 만큼의 차이가 있다. 지금의 이 사건도 훗날 ‘사법부 위기 극복’의 주요 사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