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MBC 프로그램 ‘마리텔’에서 백종원을 처음 봤다. 배즙, 매실청, 북어 대가리 육수 같은 것 없이 설탕과 간장, 고추장으로 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주부들도 ‘백주부’의 요리법을 따라 했다. ‘집밥’을 위한 부엌의 과잉 노동을 덜어줬기 때문이다. 놀라운 연기력까지 겸비한 그는 단기간 내 음식계 절대 강자가 됐다. 어이가 없었다.

그 백종원의 성채가 10년 만에 허물어지고 있다. 그를 고발하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추종하거나 눈치 보던 이들이 그가 약해지니 달려든다. 전문가와 대중의 태세 전환에 어지럼증을 느낀다. 백종원은 강림한 ‘음식 천사’도, 그렇다고 사악한 ‘음식 악마’도 아니다. 과도한 ‘마녀사냥’은 ‘맹신’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과거 MBC에서 방송된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백종원의 모습. /MBC 화면 캡처

기자는 백종원의 ‘부작용’을 다른 데서 본다. 돈가스 하나 먹겠다고 몇 시간씩 줄 서는 소위 ‘맛집 대기’ 문화가 비로소 그의 방송을 통해 전 국민의 취미가 됐다. 온 국민이 음식 감식가가 됐다. 국수가 나오면 한 젓가락으로 떠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맛을 본 뒤 “음, 재밌네” 하며 백종원 말투까지 따라 한다. 원래 소득이 늘면 미식 취미가 늘어난다. 음식 사진을 SNS에 찍어 올리는 것이 젊은 세대는 물론 전 세계인의 공통 취미다. 그러나 한국만큼 환장하는 곳은 별로 없다.

한창 사회 활동을 할 청년층이 식당에 줄 서는 걸로 몇 시간씩 ‘뽀개는’ 나라는 원래 일본이었다. 청년의 귀한 시간이 ‘혓바닥’에서 녹아날 때, 그 나라의 역동성도 함께 사라진다.

일본의 상당수 청년이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적은 임금을 받아 맛집과 게임, 팬덤에 돈을 쓴다. 부모 집을 나와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는 ‘넷(net) 난민족’, 그런 처지에 분노조차 하지 않는 ‘사토리(득도)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 효능감이 없어 투표율도 매우 낮다. 노인 정치인이 만든 법의 지배를 받으며 노인 기업가의 잔돈푼을 받아 노포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서 라멘 한 그릇을 삼킬 뿐이다.

전 세계적 고령화는 청년의 삶을 계속 그 자리에 묶어둘 것이다. 고령자의 권력은 이양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 CEO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진다는 연구가 있다. 전 세계적인 긴장과 대치, 코로나 같은 전 지구적 팬데믹도 ‘세월의 지혜’를 터득한 노인 경영자, 전문가의 입지를 더 강화한다고 한다. ‘기득권’ 사회가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계엄령 사건이 일본에서 벌어졌다면, 몇 시간 만에 해제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인인 일본인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2030의 투표율이 평균보다 낮은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우리 청년층은 ‘K정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겨울에도 여의도로, 한남동으로 달려가 정치적 의사를 강하게 표시했다.

연예 산업과 정치는 기득권보다는 인기, 영향력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분야다. 다만 연예 산업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40세 대통령 후보’ 이준석을 보면, 한국에서 정치 분야가 외려 청년층에게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용태, 김재섭, 박충권, 용혜인, 전용기, 천하람 등 40세 미만 의원이 몇 명 있지만, 아직은 국회의원의 5% 내외다. 이들 정치의 수준도 마뜩하지는 않다. 아직은 기득권 정치가 고용한 ‘젊은 치어리더’ 모습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준석과 용혜인을 즈려밟고 싶어 하는 ‘진짜 청년 정치’ 지망생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판을 먼저 깔아주는 쪽이 ‘영생’하리라는 것을 이미 경험 많은 이들은 알고 있다. 판이 열리는데, 언제까지 식당 줄만 따라다닐 건가. 맛집 좋아한다는 친한 후배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귀한 인생을 목구멍에 바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