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표 프로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이번 시즌을 20팀 중 15위로 마감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 팀이자 ‘붉은 악마’의 원조인 맨유가 우승은 고사하고 이젠 치욕의 2부 리그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 구단은 성적 하락으로 재정 위기까지 겪고 있다. 150년 역사의 맨유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맨유의 불행은 2005년 미국인 사업가인 글레이저 부자(父子)의 인수에서 시작된다. 미국 프로 풋볼 팀을 인수해 큰돈을 번 글레이저 가문은 전체 인수액 중 자기 돈 30%만으로 맨유를 인수하는 꼼수를 부렸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맨유를 인수한 뒤 고의 부도를 내고 보증을 선 맨유 구단에 빚을 갚도록 한 것이다. 1931년 이후 부채가 한 푼도 없었던 맨유는 졸지에 1조원대 빚을 떠안았다. 영국인들은 경악했다. 이사회를 장악한 글레이저 가문은 이 꼼수 거래를 짜낸 투자은행 JP모건 출신의 에드 우드워드를 새 CEO로 선임했다. 그는 JP모건 출신답게 굵직한 스폰서십 계약을 따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글레이저 부자와 새 사장은 축구에 문외한이었다. 아버지 글레이저는 맨유 홈경기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고 아들은 오프사이드 규칙조차 몰랐다. 축구단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겼다.
곪은 상처는 2013년 맨유를 27년간 이끌었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卿)이 은퇴하면서 터져 나왔다. 퍼거슨의 은퇴와 함께 성적이 곤두박질치자 팬들이 난리가 났다. 팬들은 경기 때마다 “글레이저 아웃”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글레이저 가문과 새 사장은 이 위기를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 유럽 최고의 감독과 선수들을 데려오면 성적이 저절로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착각이었다. 단기 성적에 급급해 1~2년마다 감독과 핵심 선수들을 갈아치우면서 오히려 팀의 철학과 정체성이 망가져 버렸다. 스타 플레이어는 많았지만 모래알이었다. 다급한 맨유가 선수를 데려오려면 이적료나 연봉에서 ‘영(O)’을 하나 더 붙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거머쥔 선수들도 맨유에만 오면 하나같이 부진했다. 맨유는 유럽 축구계의 호구, 최고의 복지 구단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선수를 키우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망가져 버렸다.
15위로 처진 맨유는 재정적으로도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맨유는 전체 직원 1100명 중 작년 250명을 해고했고 올해 다시 200명 감원을 추진 중이다. 직원들에게 무료 식사와 입장권, 교통비 제공을 중단하며 온갖 지질한 경비 절감책을 다 동원했는데도 작년에만 2000억원의 적자를 냈고 총부채는 2조원이 넘는다. 맨유의 연간 매출이 1조원을 약간 상회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빚에 눌려 죽을 판이다.
맨유의 몰락은 나쁜 리더십이 어떻게 조직을 망가뜨리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과거 퍼거슨의 리더십으로 사례 연구를 했는데, 앞으로는 글레이저의 실패한 리더십이 연구 대상이 될 것 같다. 기업이나 국가 운영도 본질에 있어서는 축구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치 리더들이 비전과 방향성 없이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남발했다가는 온 국민의 도덕적 해이만 초래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위대한 유산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벼랑 끝에 힘겹게 매달려 있다.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철강과 화학 산업은 중국산 홍수에 밀려 익사 직전이며 동남권 공업지역은 급격히 러스트벨트화(化)하고 있다.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반도체와 자동차·배터리 분야의 주요 대기업들이 줄줄이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나서면서 이젠 수도권마저 공동화를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국가 부채 1300조원, 사상 최악의 내수 부진, 소득 양극화와 지방 소멸, 눈덩이 복지 비용은 0%대 경제성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전 국민 돈 퍼주기로 곳간을 비운 문재인 5년, 수출과 내수가 동반 추락하는 것을 지켜만 본 윤석열 3년을 허비했다. 시간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 경제를 나락에 떨어뜨린 리더십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