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17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박관현 열사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뉴스1

해마다 5월이면 많은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지만 그중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건 김대중의 1987년 9월 망월동 첫 방문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진짜였기 때문이다. 김대중도 유족들도 대성통곡했다. 광주의 그날 이후 불과 7년이 흐른 가을이었다. 눈물 흘린 정치인 모두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제사 같은 영혼 없는 참배를 보며 “45년 세월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최근 김문수의 망월동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5월의 상징인 박관현, 그가 50일간 단식 투쟁하다 사망했던 광주교도소 독방, 그 독방에 10개월간 수감됐던 김문수. “5월을 생각하면 늘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며 울먹이던 김문수의 눈물은 ‘진짜’였다. 자칭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문전박대당했지만 광주에서 진짜를 보여줄 수 있는 보수 정당 대선 후보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요즘은 거창하게 진정성이라 하지만 원래는 ‘진짜’가 진짜다. 이 말을 공직 생활 40년을 했던 전직 관료에게 최근에 들었다. 그는 “도지사 2번, 국회의원 3번 하고 재산 10억이면 그건 진짜”라고 했다. 김문수는 2018년까지 재산이 5억원이었다. 최근 몇 년 유튜브를 하면서 5억원 정도 늘었다고 한다.

김문수는 반대편에서 ‘변절자’ 욕을 듣지만 국힘과 맞지도 않는다. 행정·입법 권력을 모두 빼앗긴 야당이 국회서 할 수 있는 건 몸싸움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2005년 3월 2일, ‘김문수 일당’의 법사위 점거는 민주당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김문수, 이재오, 박계동, 배일도 4명은 행정도시법 저지 명목으로 새벽에 법사위에 들어가 17시간 동안 농성을 했다. 진짜 데모 선수들은 달랐다. 점거 직후 못으로 출입문을 봉쇄했고 회의장 모든 CCTV를 청테이프로 봉인했다. 상임위원장 마이크 선을 잘랐다. 17시간 동안 화장실을 안 가려고 최소한의 물만 마셨고, 비상시를 대비해 용변통까지 준비했다. 국회 선진화법 이전 일이지만, 국힘에서 이렇게 투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김문수는 ‘웰빙 정당’에 없는 투쟁과 헌신의 DNA가 있었다. ‘진짜 김문수’를 모르는 김어준류의 개딸들은 그에게 너무 쉽게 ‘극우’ ‘꼴통’ 같은 말을 한다. 이재명 후보의 소년공, 인권 변호사 스토리가 이번 선거에서 쑥 들어간 건 상대가 김문수이기 때문이다. 김문수라서 최악의 조건에서 이만큼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김문수가 낯설어졌다. 극단 성향 종교인 옆에서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할 때,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할 때 그만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명분도 없는 선거 출마가 이어졌다. 우리가 알던 ‘진짜 김문수’가 아니었다. 계엄 직후 민주당 의원이 장관들을 일으켜 세워 사과를 강요할 때 김문수는 거부했다. 그런 망신 주기에 동의할 수 없지만, ‘진짜 김문수’라면 대선 후보로서 국민 앞에 비상계엄을 석고대죄해야 한다. 김건희에 대한 사과를 왜 대선 후보가 하지 않고 30대 비대위원장이 대신하나. ‘진짜 김문수’는 과거일 뿐 민주당이 “역사 왜곡, 차별”이라고 하는 최근 몇 년의 김문수가 ‘현재의 김문수’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지금 필요한 김문수는 2004년 공천위원장으로 당대표를 포함해 중진 40여 명을 불출마시켰던 김문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폭주에 박수 쳤던 친윤들, 선출된 대선 후보를 심야 날치기로 교체하려던 세력들. 이 지경이 돼도 정계 은퇴나 총선 불출마 선언 하나 없는 정당. 이들과 싸워야 그게 김문수다.

대선이 이대로 끝나면 입법 권력과 대통령 권력을 동시에 쥔 절대 권력자가, 바람보다 먼저 누워버린 사법부까지 발아래 두게 된다. 그리고 지리멸렬한 지금 국힘으로는 절대 권력을 견제할 수도 없다. ‘진짜 김문수’ 앞에 마지막 퍼즐이 놓여 있다. 김문수는 신뢰하지만 국힘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는 중도층을 안심시켜야 한다.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줄 서면 벌벌 떠는 보수 정당을 청산하고 미래 세대로 재건해야 한다. 이준석을 직접 만나 당신이 사퇴하라는 뻔한 단일화 요구가 아닌 미래의 길을 보여줄 연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문수는 문재인 정부 때 아스팔트 투사로 활동하며 “나는 열아홉 살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 73년 동안 보여준 헌신과 결단의 자세로 마지막 퍼즐을 풀면 된다. ‘진짜 김문수’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