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지난 주말 폐막한 78회 칸 영화제에 초대받은 한국 장편영화는 없었다. 넷플릭스엔 K드라마가 넘쳐나지 않느냐고? 맞다. 하지만 대부분 다른 지상파·종편 채널이 제작한 작품을 틀기만 하는 것. 넷플릭스 자체 기획·투자 작품은 급감했다.
4년 전의 이 칼럼에서 넷플릭스가 ‘오징어게임’에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쓴 적이 있다. 이유는 ‘마법의 가성비’. 이전까지의 모든 시청 기록을 누르고 세계 정상에 올랐는데, 편당 제작비는 22억원 수준. 직전까지 1등이었던 ‘브리저튼’과 ‘기묘한 이야기’ 등은 회당 100억원에서 170억원 정도를 썼다. 할리우드 반의 반도 안 되는 돈으로 거둔 대성공이니, 플랫폼 입장에선 고마워도 이리 고마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처지도 바뀌었다. ‘오징어게임’은 다음 달 마지막 시즌3를 방영한다. 편당 추정 제작비는 ‘브리저튼’ 두 배인 200억원. 주연배우 이정재의 출연료만 편당 100만달러라니, 시즌2·시즌3 총 13편을 합치면 우리 돈 140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오징어게임’과 이정재의 대성공은 물론 축하할 일.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 K콘텐츠의 수직 상승한 제작비다. 마법의 가성비는 옛말. 할리우드도 넷플릭스도, 그리고 이제 국내 투자사도 선뜻 돈을 내려 하지 않는다.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영화·드라마는 예술이자 콘텐츠이면서 동시에 산업이다.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면, 투자자들은 발길을 돌린다. 급감한 제작 편수가 현실을 선명하게 반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기간을 제외하면 2024년까지도 20여 년간 연 35~40편의 상업 영화가 개봉했다. 하지만 올해 예측은 그 절반도 못 미치는 15~20편. 절반 규모로 쪼그라든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마블 시리즈’처럼 대형 스크린이 주는 쾌감이 없다면, 요즘 관객은 굳이 극장을 찾지 않는다.
영화에만 출연하던 스타도 다들 드라마로 옮겨갔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예외없이 상승한 출연료와 제작비. 전술했듯 넷플릭스는 이제 예전만큼 한국을 고마워하지 않는다. 대신 눈 돌린 곳은 일본·인도·남미·동남아시아 등이다. 일반 시청자·관객에겐 낯설지 모르나, 콘텐츠 강국 일본의 제작비는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오죽하면 한국 대형 제작사가 일본 현지 공동 제작 드라마로 돌파구를 모색할까. 국내 미디어에는 K콘텐츠의 영토 확장으로 포장됐지만, 올해 TV아사히와 TBS에서 방영 중이거나 예정인 드라마 ‘마물’ ‘하쓰코이 도그스’의 이면에는 그런 사연이 있다.
더 큰 걱정은 작품성의 퇴보다. 거액이 들어간 대형 상업 영화도, 실험성 짙은 예술영화도 웰메이드 작품을 찾기 어렵다. 칸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영화를 한 편도 부르지 않았지만, 일본 장편은 부문별로 6편을 초대했다. 한국 영화가 여전히 ‘봉박홍’(봉준호·박찬욱 ·홍상수)에 의존하고 마동석의 한 방 액션에 취해 있을 때, 일본은 세대교체에 성공하면서 세계를 향해 AI 이후의 인간과 전체주의 이후의 국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개인적으로 충격받은 두 가지 경험이 있다. 하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구글 연례 개발자 대회에 등장한 AI 동영상. 유료 버전 구독료 월 300불(약 45만원)이면 누구라도 20세기폭스 영화·픽사 애니메이션 수준의 동영상을 한 달 80편까지 만들 수 있다. 아직은 1분 분량이지만 장편 분량 확장도 순식간이다. 또 하나는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회고전. 고레에다 감독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선 젊은 창작자들이 영화계보다 OTT 쪽으로 많이 옮겨간 것 같다. 일본은 변화가 느린 덕분에 영화계가 OTT에 휩쓸리지 않았다. 극장을 지키려는 힘이 여전히 남아 있다.”
비싼 제작비 탓을 할 수도 있고, AI와 유튜브를 핑계 삼을 수도 있으며, 관객들의 변덕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누구는 기술로, 또 누군가는 뚝심으로, 또 누군가는 두 가지를 버무려 이 위기를 돌파하고 있다. 외부에 책임을 돌리거나 도와달라 부탁하기 전에, 무엇보다 한국의 배우·제작자·극장부터 각성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