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 설즈버거(Sulzberger) 뉴욕타임스 회장 겸 발행인의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제목은 ‘자유로운 국민에겐 자유 언론이 필요하다(A Free People Need a Free Press)’이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여론면에 실렸고, 이날 설즈버거 회장은 노트르담대에서 열린 ‘글로벌 민주주의 콘퍼런스’에서 같은 주제로 강연도 했다. 설즈버거는 지난해 9월 워싱턴포스트에도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에 대한 칼럼을 기고했다.
설즈버거는 미국 내 언론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 언론인 신분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의 중요성에 관해 역설했다. 언론인이 언론의 가치와 정도(正道)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의 역할은 직접적인 공격 아래 놓였고,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억압하고 처벌하려는 시도 또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50년 동안 미국의 국가 모델이 성공을 거두도록 한 독특한 공식을 이러한 ‘반언론(anti-press)’ 모델이 위협합니다.
자유로운 국민에겐 자유 언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법과 규범, 제도를 와해시키려는 야심 찬 독재자들은 보통 자유 언론을 첫 번째 표적으로 삼습니다. 권력자들이 독립적인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언론을 제약하면, 멋대로 행동하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국은 건국 이래로 언론을 자유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로 공인해 왔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통찰을 수정헌법 1조에 규정했고, 언론은 헌법을 통해 보호받는 유일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세대의 대통령·의원·대법관은 대부분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방어했습니다.
언론이 국가의 성공에 꼭 필요하다는 초당적 인식은 이 같은 기조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언론의) 세 가지 역할은 미국 시민사회의 건강을 위협하는 도전 과제들과 정확히 연계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허위 정보가 급증해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언론은 대중이 선거, 경제, 혹은 각자의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필요로 하는 믿을 만한 정보가 돌도록 보장합니다.
또 양극화와 부족주의(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인 집단을 추구하는 이념)가 사회적 유대를 약화시킬 때 언론은 분열된 국가가 하나의 공동 목표 아래 단결할 수 있도록 상호 간의 이해를 촉진합니다.
불평등 확산이 ‘미국의 약속(American promise)’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때 언론은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숨겨진 진실을 폭로해 대중이 권력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언론이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박이 세계 곳곳에서 점점 거세지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숫자의 기자들이 살해되거나 투옥됐습니다. 더 많은 기자들은 괴롭힘, 협박, 감시, 검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중국·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가장 적나라하고 극심하게 이뤄집니다. 그러나 헝가리·인도 같은 나라에서도 언론을 약화시키기 위한 보다 교묘한 전략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권력 견제에 대한 장치를 와해시키고 있는, 보다 제한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국가들이죠.
이 같은 반언론 전략은 미국의 언론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로 이 순간, 미국에서도 구사되고 있습니다.
독립적 보도를 가능하게 했던 사업 모델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언론사 일자리의 약 3분의 1이 사라졌으며, 수백 개의 신문이 문을 닫았고, 지금도 매주 두 개 이상의 신문이 계속 폐간되고 있습니다.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지배하는 정보 생태계는 이 같은 경제적 압박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온라인 정보의 주목도를 통제하는 그들은 독립적인 저널리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감을 표출하고, 대중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품질에 대해선 그다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규모가 쪼그라들고 재정적으로 약화됐으며 신기술로부터 단절된 이 산업의 종사자들은 그들의 권리와 정당성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실을 환영합니다. 우리의 직업이 가장 환대받는 직업은 아니라는 점을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매체들이 정보 전달보다는 엔터테인먼트(유희)를, 이해 촉진보다는 분노와 두려움의 확산을, 중요한 문제보다는 유행하는 사안을 전파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비평가는 많고 기자는 너무 적은 나라에서 매체에 대한 신뢰가 급락한 것을 우연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가장 엄격한 (보도) 기준과 절차를 갖추고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최고 수준의 뉴스 조직조차 때로는 잘못을 합니다. 뉴욕타임스가 매일 ‘바로잡습니다’를 게재하는 이유이지요. 우리의 오랜 역사를 뒤돌아보면 더 큰 실수를 저지른 사례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인 언론은 스스로를 바로잡도록 설계됐습니다. 우리는 비판자들로부터 듣는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던집니다. 예상치 못한 사실도 수용할 정도로 충분히 열려 있을까? 만연하게 퍼져 있는 서사에 충분히 의문을 제기했을까? 우리가 다루는 이슈와 커뮤니티를 속속들이 이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투자했을까? 너무 무르지는 않나? 너무 엄격하지는 않나? 두 번, 세 번, 그리고 또 다시 한번 확인을 했나? 실수를 저질렀다면,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그 실수로부터 배워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같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여전히 꼭 필요합니다.
노트르담 대학의 두 저명한 동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권력과 언론 사이에 존재하기 마련인 긴장 관계를 이해하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한쪽에는 35년 동안 노트르담 대학 총장을 역임한 테오도르 헤스버그 신부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대학 신문인 ‘디옵저버’를 창간한 야심 찬 학생 기자 밥 앤슨입니다. 1960년대 중반의 정치적·문화적 혼란 가운데 테드 신부는 (어쩌면 너그러운 마음에서, 아니면 학생 언론에 우호적인 기사가 나오게 하려고) 젊은 기자에게 총장 사무실에 언제든 방문해도 좋다고 초대를 했습니다.
취재원에 대한 접근권과 둘 사이의 권력 격차를 고려할 때, 앤슨은 이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앤슨은 언론의 독립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가장 첨예한 대학 내 문제에 겁 없이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증명했습니다. 테드 신부에게 ‘디옵저버’는 골칫거리가 되었으며, 급기야 (기사 때문에) 총장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보도에 대한 대학 측의 불만이 너무 커진 나머지 앤슨을 퇴학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정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앤슨이 졸업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몇 년 후, 앤슨은 타임지 기자로 취재하던 중 북베트남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테드 신부는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으며, 교황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앤슨은 후일 테드 신부를 “내 수호천사”라고 부르며, “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테드 신부는 다른 영적인 은유를 사용했습니다. 앤슨을 구출한 것은 “지옥에서 악마를 끌어내는 것과 같았다”고 농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앤슨은 바로 노트르담 대학으로 돌아와 대학, 사랑받는 미식축구 팀, 그리고 테드 신부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또다시 작성했습니다.
그럼에도 테드 신부는 자신과 같은 공인들을 비판하는 언론의 가치를 결코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학생 신문 편집장이었죠.” 그는 앤슨에게 말했습니다. “모든 편집장은 애를 먹입니다. 그게 직무의 일부죠.”
자유 언론은 애를 먹일 수 있지만, 이 또한 건강한 민주주의의 일부입니다.
최근의 뉴스를 대충만 읽어봐도 우리 민주주의가 심각한 시험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법치, 권력 분립, 적법한 절차, 지적 자유 등 기초적인 법과 규범이 약화되거나 무시되고 있습니다.
언론은 압박을 받는 미국 내 많은 기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정부 기관, 대학, 문화 기관, 연구 조직, 시민 단체, 법무법인 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시도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행정부 권력을 견제해야 할 의회와 사법부의 권한도 공격을 받습니다.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유 언론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위의)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자유 언론은 자유 사회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 선조들이 ‘자율 통치라는 고귀한 실험’이라고 부른 이 실험이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자유롭고 강하고 독립적인 언론만큼 중요한 요소는 없다.”
반면 (권력에) 영합하는 언론은 지도자들이 비밀을 숨기고, 현실을 왜곡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해서 결국 권력을 강화하고 굳히는 것을 용이하게 만듭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종종 모델로 지목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정치 담당관이 한 이 발언처럼 말입니다. “한 국가의 언론을 통제하는 자는 그 국가의 사고방식을 통제하며, 이를 통해 그 국가 자체를 통제한다.”
독립적인 저널리즘의 선도자로서 다시 확실히 하자면, 저는 우리의 역할이 정치적 논쟁을 보도하는 것이지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저항 세력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반대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실, 그리고 마땅히 그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대중에게만 충성합니다. 이것이 뉴욕타임스와 같은 독립적인 언론사가 민주주의에서 수행하는 독창적 역할입니다.
이는 우리가 트럼프 정부에 대해 완전하고 공정하게 보도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하는 공격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들의 권력 남용과 실정에 대해 완결된 보도를 이어갈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의 성공과 성과, 미국 곳곳에서 트럼프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 또한 취재해 보도할 것입니다.
위협에 직면해 독립성을 고수하는 것은 굴복이나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공모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을 추적하고 사건의 전반을 전달하겠다는 우리의 사명이 누군가의 압박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거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저는 주요 언론사의 대리인으로서, 정부가 대중의 알 권리를 훼손하려고 시도한다면 목소리를 낼 책임이 있습니다.
제 선임자들과 저는 수십 년 넘게 공화당, 민주당 정부를 두루 거치며 위와 같은 원칙을 실천해 왔습니다. 그 정부들도 물론 불만이 있었죠. 예를 들어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그의 나이와 건강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기자들과 언론사를 종종 공격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기자들과의 즉흥적인 질의·응답을 피하기 위해 보기 드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바이든의 언론 회피를 지적했기 때문에, 저는 이 사안에 대해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바이든의 백악관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 기사를 쓴 기자들을 계속 공격했죠.
바이든과 다르게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더 많은 취재 접근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측면에서 그는 백악관과 언론 사이의 자연스러운 긴장 관계를 점점 더 대립적인 관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가장 명확히 드러납니다. 그는 “실패한 뉴욕타임스”와 같은 유치한 모욕으로 분쟁을 부추겼습니다. 이후 그의 비난은 언론의 본질을 직접 공격하는, “가짜 뉴스 뉴욕타임스”와 같은 표현으로 격화됐습니다.
머지않아 트럼프는 (옛 소련의) 스탈린이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에 쓴 “국민의 적”이란 꼬리표를 붙이며 뉴욕타임스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표현도 약하다고 생각했는지, 형사 재판에서나 쓰일 ‘반역’ 같은 범죄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트럼프는 이제 기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감옥에서 성폭행당할 가능성에 대한 농담까지 합니다. “발행인도 포함된다”는 말도 종종 덧붙이면서요.
2018년 발행인직을 맡은 직후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초청을 받았습니다. 과격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뉴욕타임스의 오랜 독자로서 우리 기자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으며, 자신의 관심을 끈 기사를 스크랩해 서명해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군중에서 벗어나면 그는 자신이 “나의 신문”이라고 부른 뉴욕타임스를 “위대하고 위대한 미국의 보석, 세계의 보석”이라고 칭찬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린 비공식 만남 및 그 이후의 또 다른 회동에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언론적 발언을 직설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원한다면 뉴욕타임스, 또는 저 개인을 공격해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라고 특혜를 줄 필요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발언이 민주적 규범이 취약한 국가들에 나쁜 선례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권력에 목마른 다른 나라 지도자들은 미국 대통령이 언론을 공격하는 모습을 ‘기자를 공격해도 무방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제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가짜 뉴스’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이후 수년에 걸쳐 70국 이상이 이른바 ‘가짜 뉴스’를 억누르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많은 경우 이 법들은 허위 정보가 아닌, 권력자의 행위에 대해 진실된 보도를 제공하는 독립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국경 없는 기자들’이 평가한 언론 자유 보고서에서 ‘좋음(good)’ 평가를 받은 나라의 숫자는 2016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반언론적 언어를 비자유주의적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수출했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이 언어를 언론 탄압을 위한 공격적인 새로운 전략을 짜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된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를 통해 이 악순환은 완결됐습니다. 그가 영감을 준 반언론 전략이 미국으로 역수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행동으로 전환된 지금은 매우 위험한 순간입니다.
제 동료들과 저는 이 새로운 반언론 전략의 도구·전술을 연구하는 데 지난해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불신을 조장하고 괴롭힘을 일상화한다거나, 민사 소송을 악용하고 국가 권력을 남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반언론 전략에) 쓰입니다. 궁극적 목표는 명확합니다. 독립 언론의 사회적·재정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난감한 질문을 던지고 대중에게 진실을 전달하려는 기자들을 배제하고, 정권의 입장을 전파해주는 언론인들을 띄우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감시견 역할을 해야 할 자유 언론을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길들이려 합니다.
헝가리의 운명을 한번 보십시오. 오르반 총리와 측근 세력이 언론의 80%를 장악했고, 이 언론들은 사실상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소수 언론은 정치적·법적·경제적으로 강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의 정부 친화적 메시지가 너무 광범위하고 집요하게 전파돼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거나 듣는 유일한 정보가 되어버렸습니다. 부패는 통제되지 않고, 기업 경영엔 정치적 연줄이 가장 중요해졌습니다. 불리한 처지에 몰린 집단들의 권리는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야당은 매체를 통해 유권자에게 이 문제를 언급하기조차 어려워졌고, 매체를 활용해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더 불가능한 일이 됐습니다.
지난해 9월 워싱턴포스트에 이 같은 분석을 담은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저는 언론계가 다가올 상황에 대비하도록 독려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국가에서 언론인을 적대하는 이 같은 전략이 잔인하도록 좋은 효과를 냈고, 트럼프의 주변 인사들이 이를 미국에서도 구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의 당시 경고가 이토록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충격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법무부에서 귀에 익은 동시에 놀랄 만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언론에 대한 공격을 반복하면서, 심지어 기자들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암시했습니다. 선거 유세장에서라면 지지층을 자극하려는 과장된 수사라고 무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가 최고의 법 집행 조직의 본부에서 이런 말을 했다니 사실상 지시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트럼프의 발언이 있은 지 한 주 만에 정부는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한 다수의 정보 유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중국과 전쟁이 발발할 경우를 대비한 미국의 기밀 계획에 대해 일론 머스크가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었다는 우리의 보도를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머스크가 중국에서 벌이는 사업의 큰 규모, (기밀 정보에 대한 머스크의) 보안 규정 위반 등을 고려하면 명백히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였습니다. 기사가 나온 후 대통령은 문제의 회의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보도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머스크의 회의 참석이) 부적절하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으며, 브리핑은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이는 좋은 보도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례적으로, 이에 대한 정보 유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내사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면 역효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하지만 진정한 목표가 정부 부패를 보도하는 기자나 이를 폭로하려는 내부의 정보원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 나라의 반언론 전략이 어떤 모습인지, 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전략은 서로를 강화하는 다섯 요소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다섯 모두 이미 미국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이래 미국 언론에 대해 가해진 가장 직접적인 공격들입니다.
첫째, 독립적인 기자와 언론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괴롭힘을 부추깁니다. 이는 주로 언어로 수행되는 작전으로 기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지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오늘날 권력자나 논란의 대상에 대해 보도하는 기자들은 분노로 가득하고 편향된 수천 건의 위협 메시지에 시달립니다. 이 온라인 ‘소음’은 현실 세계로 빠르게 번질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제 동료들은 신상 정보가 유출되고, 스토킹을 당하고, 스와팅 공격(테러가 있다고 경찰에 허위 신고해 특수 경찰 등이 집으로 출동하는 것)을 받았습니다. 신원이 도용당해 범죄 혐의로 허위 고발을 당한 동료도 있습니다. 살해 위협도 받았습니다. 이런 공격을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더라도 그 위협이 자녀의 학교, 배우자의 직장, 부모의 집으로까지 확산될 때 많은 기자들은 큰 공포를 느낍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가 앞서 언급한 대로 언론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했고, 그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로 공격적이었습니다. 기자에 대한 단순한 위협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언론을 싫어하고 불신하도록 훈련시키려 합니다. 기자들이 받는 모든 공격이 당연하다고 믿도록 정당화합니다. 단기적으로 이런 행태는 독립 언론을 위축되게 만들어, 기자들이 불가피한 공격을 감내할 가치가 있을지 스스로 묻게 만듭니다. 장기적으로는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을 용인하는 환경을 구축합니다.
둘째 전략은 민사 소송을 이용해 독립적인 기자와 언론사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소송이라도 이를 방어하려면 비용이 많이 필요하고 일상이 침해되며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러한 소송은 보도 활동에 써야 할 시간과 자원을 빼앗아갑니다. 이는 또 언론사들이 소송을 당할 위험이 큰 탐사 보도를 기피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작은 언론사들은 소송에서 이겨도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고, 패소할 경우 파산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괴롭히기 위해 민사 소송을 활용해 왔습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독립 언론사들은 수년간 주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소송들은 주로 명예훼손 소송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명예훼손 승소 판결을 용이하게 만들겠다고 오랫동안 공언해 왔습니다.
최근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에 대한 새로운 법적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한 소송에서 그는 (지역 언론인) 디모인레지스터가 대통령 선거 때 실제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여론조사를 게재했다며 소비자에 대한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는 법원의 실제 판결과 무관하게 ‘승리’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2016년 뉴욕타임스 기자 전체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한 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변호사 비용으로 몇 달러를 썼고, 그들은 훨씬 더 많이 썼다. 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기 위해 한 행동이었고, 만족한다.”
재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ABC, 메타, X 등 기업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습니다. 많은 법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소송 명분이 취약하다고 분석했지만, 이들 회사의 경영진은 합의금을 안 내면 대통령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합의금을 내면 대통령이 보상을 해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에 합의금을 지급했습니다.
셋째 전략은 법과 규제의 권한을 남용해 독립 언론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의 가장 명백한 남용은 기자들의 직무 수행을 문제 삼아 기소하고 투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권력 남용으로부터 비교적 잘 보호돼 있고, 근거 없는 형사 고발은 대중의 반발을 초래할 위험이 있습니다. 보다 미묘하고 기술적인 형태의 행정 명령이 종종 더 효과적일 뿐더러 대중의 분노를 유발할 가능성도 적습니다.
규제 감독, 이민 단속, 세무 조사, 정부 계약 등 국가 통치 시스템에 존재하는 허점을 악용하는 방식 등이 이를 위해 사용됩니다. 언론을 표적으로 삼으면서도 표면적으론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많은 언론사 소유주가 정부와 계약을 맺었거나 정부의 규제를 받는 비(非)미디어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노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대통령의 첫 임기 중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가 소유한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불만으로 아마존과 우체국(USPS) 간의 배송 계약을 무산시키려 시도했고, (아마존의) 국방 사업 관련 계약도 축소시키려 했습니다. 이번 임기 중엔 대학 신문에 게재된 칼럼을 빌미 삼아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학내 외국인 학생을 표적으로 삼은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생 기자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해당 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국세청을 동원해 대통령이 싫어하는 비영리 단체를 압박하려는 시도도 목격했는데, 이는 성장 중인 비영리 언론이 공격당할 수 있는 명백한 취약점입니다. 지역 라디오 방송국, PBS, 미국의 소리(VOA) 방송 등 공공 매체에 대한 자금 지원 중단이나 해체 시도도 있습니다. 방송 채널을 규제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판한 뉴스 조직을 직접 표적으로 삼는 데 가장 적극적입니다. FCC는 PBS, NPR, ABC, NBC 뉴스의 모회사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CBS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개인적으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 적시한 것과 비슷한 일상적 편집 결정으로 인해 (FCC의) 조사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조사는 CBS의 모회사 경영진이 추진 중이지만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던 별도의 합병 건과 관련한 압박을 가중시켰습니다. 이에 모회사 경영진은 독립적인 보도로 유명한 ‘60 미니츠’ 보도국에 압력을 가했고 책임 프로듀서가 항의의 뜻으로 사임했습니다.
넷째 전략은 부유하거나 힘 있는 이들을 동원해 정부의 언론 공격에 가세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른 국가에선 기업인들이 정부와 친분을 쌓는 수단으로 이 방식을 활용합니다. 그들은 민사 법원이나 힘 있는 기업을 통해 맘에 안 드는 기자들을 공격합니다. 지방 및 주 정부의 야심 찬 정치인들도 나름의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 중 많은 이가 이 경로를 따랐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머스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뉴욕타임스를 ‘선전 매체’에서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까지 다양한 표현으로 공격하는데, 이는 종종 우리 신문이 머스크나 그의 회사에 대한 주요 보도를 게재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이루어집니다. 한편 그의 소셜 미디어 플랫폼 X는 일반 대중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노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해 왔습니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전략은 ‘대체’입니다. 독립 언론 해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보고, 지지자들이 통제하는 정부 친화적 언론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전략입니다. 이런 매체들은 기자회견에서 정권의 비판자들을 공격하고 집권당의 주장을 충실히 재생하면서, 언론인 역할을 가장해 정부 입맛에 맞는 질문을 던집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만(灣)’ 대신 ‘아메리카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만’을 쓴 AP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막으면서 이와 동시에 대통령의 주장을 재생산하고 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편향된 언론사, 인플루언서, 활동가들에게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미 예산 삭감으로 약화된 VOA는 친트럼프 매체인 ‘원 아메리카 네트워크 뉴스(OANN)’를 틀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관점의 확대라고 포장됩니다. 그럴싸한 목표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실상은 불편한 질문을 입맛에 맞는 질문으로, 독립적인 보도를 집권당의 선전 수단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입니다. 폭스뉴스 기자 제이크 히네리히가 최근 지적했듯이 이런 전략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 안겨주는 것”입니다. 미 행정부는 이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진정한 저널리즘은 죽었다. 우리가 대신하겠다!” 지난달엔 백악관의 자체 뉴스 사이트 ‘백악관 통신(The White House Wire)’을 출범시켰습니다.
일부 미디어 경영진의 초기 대응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중요성을 아는 이들의 우려를 자아냈습니다. 타당한 반응입니다. 몇몇 기업은 앞서 지적했듯이 승소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트럼프 측에) 거액의 합의금을 지급했습니다. 비판자들은 이를 (마피아에게 지급하는 것과 비슷한) ‘보호비’에 비유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아메리카만’같이 대통령이 선호하는 용어를 채택하거나 그가 반대하는 (다양성 확대 등) 정책을 철회했습니다. 대통령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보복을 피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죠. 일부는 언론 자체를 통제하는 데까지 나아갔으며, 오피니언(여론면) 담당 부서의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등 사측이 대통령을 달래려고 시도하는 듯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널리즘에 기반한 결과물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여러 언론사는 사실에 따라 보도하면서 행정부와 그 지지자들로부터 보복을 받을지도 모르는 기사를 계속 게재하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AP는 행정부의 협박 시도를 법원에서 저지하는 동시에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미심쩍은 주장을 지적하는 주요 보도를 게재했다는 점에서 큰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행정부의 혼란스러운 경제 정책 접근 방식을 파고들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감한 정부 데이터의 무분별한 처리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폴리티코는 국방부 내부의 기능 마비를 드러냈습니다. 프로퍼블리카는 행정부에 맞서는 이들을 습관적으로 위협하는 한 고위 검사의 행태를 취재했습니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요소를 계속 취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취재진은 매일 뉴스의 홍수를 따라가며 보도함으로써 필수적인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중요한 기사들로 다시 돌아가서 그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이해시키도록 노력합니다.
한편 우리 탐사 보도 담당 기자들은 방대한 탐사 보도를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암호화폐 기업과 다른 사업에서 이익을 취한 방식을 폭로했습니다. 국가 안보 지도자들의 무모한 소통 습관도 드러냈습니다. 베네수엘라 범죄 조직원으로 분류돼 엘살바도르 감옥에 수감된 수십 명이 사실은 범죄 조직과 연관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철저히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 보도에 대해 예상대로 압력을 가했습니다.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고, 접근을 제한하고, 정부 구독을 취소하고, 소송하겠다고 위협하고, 정보 유출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행정부는 더 심각한 조치를 계획 중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를 가장 걱정하게 만든 신호는 행정부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권리와 원칙을 옹호하지 못하는 공공 및 민간 부문 리더들입니다. 장기간 언론을 지지해온 대기업, 비영리 단체, 재단들이 이제 공개적으로 언론사를 지지하다가 보복을 당할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옹호해온 지도자와 학자들조차 자신의 글이 행정부의 주목을 받을까 봐 두렵다며 기고를 철회합니다. 이런 반응은 우리로 하여금 외부 법무법인에 연락해 헌법이 보장하는 우리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게 만들 만큼 실망스럽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이들의 조심스러움을 이해합니다. 트럼프 정부는 비판자로 여기는 이들을 겨냥해 광범위하게 권한을 남용하기 때문에 개인과 기관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권리는 행사할 때만 유지됩니다. 불의를 막아주는 시스템은 그 시스템을 믿고 의지할 때만 당신을 지켜줍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분산될 때만 잘 작동한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개인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작은 권리를 행사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명 한 명이 권리를 포기할 때마다 이 또한 영향을 미칩니다. 두려움은 전염됩니다. 하지만 용기 또한 전염됩니다. 권력에 맞서기, 눈앞의 자기 이익이 아닌 장기적 원칙을 우선하기. 이러한 행동은 행사할수록 강화됩니다.
이 압박의 순간에, 저는 뉴욕타임스가 모든 유형의 권력을 흔들기 위해 174년 동안 경험을 축적해 왔다는 점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미국·소련 군비 경쟁의 세부 사항을 폭로함으로써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에 우리 기자의 집 전화를 도청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분개하게 만들었습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소송 위협에도 불구하고 ‘펜타곤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우리는 ‘손에 피를 묻힐 것’이라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민에 대한 영장 없는 감시를 취재했습니다. 우리는 연이어 취임한 대통령들이 승인한 무모한 드론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 수를 폭로했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러한 실패가 기록된 문서를 불법적으로 숨기려 했을 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례적인 예시들이 아닙니다. 정부의 행동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우리만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자주 제기하는 조직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원칙을 따르다가 때로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가 접근권 상실, 광고 감소, 구독 취소로 이어진다면 그 역시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을 지키고 엄정하고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때, 장기적으로 더 깊은 신뢰와 독자층 확대라는 혜택을 얻는다는 사실도 배워서 압니다.
뉴욕타임스는 진실을 추구하고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계속하며, 어떤 상황에도 맞서 나가겠습니다. 우리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이후 모든 행정부를 거치며 두려움이나 편향 없이 이 일을 해왔습니다. 언론 환경이 계속 악화된다면, 뉴욕타임스는 언론 자유를 보호할 안전망이 없는 지역에서 취재하며 터득한 교훈을 활용할 것입니다. 동료들이 지속적인 감시나 신체적 위협에 직면한 지역들에서 말이죠.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서 취재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어려워지는 미국의 취재 환경에 맞게 기자들을 준비시켜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정보 제공자에 대한 조사 확대에 대비해 취재원을 더 잘 보호할 방법을 교육하고, 세금 및 규제 위반 조사가 남용되는 현실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청렴한 직무 수행 관행을 유지하고, 안전·보안·소송 대비 비용을 거의 열 배 수준으로 증액하는 조치 등을 취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조치는 다른 언론 기관이 압력을 받을 때 지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업계는 취재할 때는 경쟁하지만 언론 자유라는 목표를 위할 때는 단결해 왔습니다. 이는 법무법인과 대학을 겨냥해 구사되고 있는, ‘나누어 정복하라’는 (트럼프 정부의) 전략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지금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 일반 대중이 왜 (자유 언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더 설명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모든 조치를 취하면서 우리는 독립성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이는 용감한 헝가리 탐사 기자 안드라스 페토가 정부 압력 아래 취재했던 경험을 설명하며 강조한 내용입니다. 그는 기자들이 스스로를 정권에 맞서는 투사 혹은 피해자로 묘사할 때, 독재자들이 가장 기뻐한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권력자들이 기자들을 객관적 진실의 전달자가 아닌, 정치적 반대파의 일원으로 공격하는 데 활용되는 ‘탄약’이 됩니다.
“만약 당신이 정파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렇게 취급받는다고 의아해하지 마십시오”라고 페토는 말합니다. “아무도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인권 활동가, 시민 단체, 또는 단순히 일반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언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일을 충실히 잘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가장 잘 지켜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데, 언론의 역할은 모두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맥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언론이 없다면, 정부가 법에 따라 행동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도자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요. 국가의 제도가 사회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짜여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국민의 자유가 유지되고 방어되며 옹호되는지, 아니면 진실과 현실을 선전과 허위 정보로 대체하려는 세력에 의해 자유가 침식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견고하고 독립적인 언론은 자치, 개인의 자유, 국가의 위대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한때는 급진적이라 여겨졌던 이 통찰은 수정헌법 1조로 법제화되어, 수세기에 걸쳐 초당적으로 언론인의 권리를 보호하게 만든 전통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 전통이 깨진다면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재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 언론과 민주주의가 압박의 시기를 맞이하는 지금, 저는 여러분이 신뢰할 만한 언론을 찾아 이 둘(언론과 민주주의)을 지원해주시길 촉구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보도를 하고, 권력자라면 누구에게든 도전해 온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진 언론을 찾아보십시오. 삶과 일상 속에 이런 저널리즘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세요. 읽으십시오. 들으십시오. 보십시오. 뉴스와 상호작용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가장 쉬우면서도 필수적인 행위 중 하나입니다. 지금은 뉴스를 외면할 때가 아닙니다.
※이 에세이는 노트르담대 국제대 내 켈로그연구소 연설로 먼저 발표됐습니다.
◇A G 설즈버거
아서 그레그(약칭 A G) 설즈버거는 1896년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의 4대 후손이다. 옥스·설즈버거 가문이 배출한 여섯 번째 회장 겸 발행인이다. 1980년생으로 브라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프로비던스저널·오레고니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2009년 뉴욕타임스에 합류해 주로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다. 2014년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전략이 담긴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를 만든 팀을 이끌며 두각을 나타냈고, 부친 아서 옥스 설즈버거 주니어에 이어 2018년 발행인이 됐다. 취임 후 유료 구독 모델을 강화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설즈버거는 2023년 10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주제로 한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 사실로 맞서 싸워야 한다”며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