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탄핵 직전인 2017년 3월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은 법원에 큰 상흔을 남겼다. 일부 정치 판사들이 민주당과 양승태 대법원을 ‘협공’하면서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았고 14명이 기소됐다. 법원은 둘로 쪼개졌고 엘리트 판사들은 대거 법원을 떠났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재판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법원에는 사상 초유의 압박들이 가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13일 ‘조희대 특검법’ 강행 방침을 밝혔고 14일은 대법원 재판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 파기환송심 재판 연기로 잠시 접어둔 ‘대법원장·대법관 탄핵’도 여전히 살아 있는 카드다.

법원은 과거보다 훨씬 심각한 형태로 권력의 ‘매운맛’을 보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주도자들은 재판 독립을 수호한다는 명분이라도 내세웠지만 이제는 다수당이 자기 당에 불리한 재판을 ‘범죄’로 간주해 특검으로 수사하겠다고 한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판사 등이 다음 특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돈다. 이런 법원이 미래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후보 재판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서울고법이 파기환송심을 대선 후로 미룬 데 이어 대장동·위증 교사 재판도 줄줄이 밀렸다. 이미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 풀’이 됐다.

사법행정권 남용은 세 차례 법원 자체 조사라도 거쳤다. 하지만 ‘조희대 특검법’은 최대 20명의 검사를 동원해 대법원장을 수사한다. 유권자 눈치를 보는 대선 기간에 발의된 법이 이 정도다. ‘사법 독립 침해 유감’ 성명이라도 나와야 할 판에 일부 판사는 거꾸로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고, 대법원 판결의 정치적 중립 위반을 주제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겠다고 한다. 그동안 줄탄핵과 조직 폐지 압박에 시달리던 검사들조차 “우리보다 법원이 먼저 없어지는 거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다.

판사가 헌법과 법률과 양심 대신 권력의 향배에 따라 재판하면 이는 곧 사법의 소멸이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재판권이 독립되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입법·행정의 횡포를 견제할 기관이 사법부이기 때문이다. 170석의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행정권까지 갖는다. 남은 사법 권력은 탄핵·특검이라는 ‘채찍’과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린다는 ‘당근’으로 순치하는 중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을 세게 공격할수록 후보군에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6일 열릴 법관대표회의는 전체 법관 126명 중 회의 소집 정족수 26명을 겨우 채웠다. 침묵하는 다수의 반감이 컸다는 징표다. 이들이 ‘대법원 재판 유감 표명’을 의결해 정치권에 힘을 실을지, 거꾸로 ‘사법 독립 침해 유감’을 의결할지가 이번 회의의 관전 포인트이자 사법 독립의 분수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