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GS타워 'GS아트센터' 내부 모습./연합뉴스

오랜만에 친척이나 친구 집에 찾아가는 것 같았다고 할까. 3년 만에 다시 문을 연 서울 역삼동의 GS아트센터로 향하는 기분은 살짝 묘했다. 옛 LG아트센터가 지난 2022년 강서구 마곡으로 옮겨간 뒤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서 최근 개관했다. 물론 공연장 간판을 ‘GS아트센터’로 바꿔 달았고 전체적인 색감도 화사한 베이지색 톤으로 변했다. 하지만 입구까지 이어지는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복도 유리창에 걸린 블라인드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전체 객석만 1103석에서 1211석으로 살짝 늘었을 뿐, 내부 골격도 옛 모습을 유지했다. “예전 공연장을 즐겨 찾았던 관객들에게 추억을 전해 드리고 싶었다”는 박선희 GS아트센터 대표의 말이 실감 났다.

지난 2000년 개관한 구(舊) LG아트센터는 강남 한복판에서 참신한 기획들로 연일 화제를 일으켰다. 재즈 색소폰 명인 소니 롤린스와 현대음악 작곡가 스티브 라이시, 브라질 문화부 장관을 지낸 저항적 음악가 지우베르투 지우 등이 이 극장을 통해서 처음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여성 백조를 근육질 남성으로 바꾼 매슈 본의 도발적인 발레 ‘백조의 호수’를 국내에 소개한 곳도 LG아트센터였다. 순수 문화와 대중문화, 현대음악과 고음악의 장르 경계가 이 공연장에서는 없었다. ‘낮에는 산업, 밤에는 유흥’이 전부인 줄 알았던 강남 테헤란로가 문화 예술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곳이기도 했다.

두 대기업이 계열 분리한 지도 올해 20년이다. LG와 GS그룹의 계열 분리에 따라서 공연장도 자연스럽게 ‘두 지붕 두 가족’이 됐다. LG아트센터의 명칭과 인력은 마곡의 LG아트센터에서 흡수했고, 입지와 건물은 역삼동의 GS아트센터에서 물려받았다. 그동안 사업 분야가 겹치는 일이 드물었던 이 두 기업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조우(遭遇)한 것이다.

두 기업의 ‘문화 라이벌전’이 벌어진 셈이지만, 이 경쟁이 여느 산업 분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매출과 수익성에서 ‘황금알’을 낳는 분야라기보다는 손해나 적자를 감수해야만 하는 일종의 ‘출혈 경쟁’에 가깝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기부 채납한 뒤 20년간 운영하는 마곡의 LG아트센터나 금싸라기 같은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GS아트센터 모두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미국 최고의 공연장인 뉴욕 카네기홀 역시 기부자인 미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의 이름을 딴 것이다. 전설적 록 프로듀서이자 음반사 사장 출신의 데이비드 게펜(82) 역시 뉴욕 필하모닉의 전용 음악당인 ‘데이비드 게펜홀’ 리노베이션 공사에만 1억달러를 쾌척했다. 개인과 기업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잃는 건 돈이요, 얻는 것은 명예’라는 사회 공헌의 본질은 같을 것이다. 부디 이 즐거운 라이벌전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